[그리스 디폴트]아테네 거리 고달픈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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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 330유로와 전화요금 39유로를 지급하기 위해 현금인출기 앞에 줄을 서 있던 앙겔리키 안드레아키 씨(83)는 “현금을 찾기 위해 이렇게 줄을 서야 하다니 지금 그리스 상황은 현금을 ‘배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우리나라를 북한으로 만들어 놨다”고 분노했다. 그는 “임차료를 내야 하는데 한꺼번에 현찰을 마련할 수 없어 앞으로 닷새 동안 매일 현금인출기 앞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나마 상당수 현금인출기는 현금이 없어 작동도 하지 않는다”고 애를 태웠다.
또 주유소 상점 호텔 공항 등 어디에서도 신용카드 거래를 할 수 없다 보니 비행기도 현금을 내야 탈 수 있다.
이 같은 고통은 특히 노인이나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연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한 노인들이 은행 문을 쾅쾅 두드리는 안타까운 장면들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멀쩡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피해 한밤중에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아테네 현지에서는 하루 60유로인 인출 제한 금액이 20유로로 낮춰질 수 있다는 흉흉한 얘기까지 나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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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급감으로 특히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1일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크리스토스 게오르기오풀로스 씨는 “지난 이틀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결국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언제 다시 열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며 “돈이 없어서 임금 대신 가게에서 팔던 게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고 말했다. 아테네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기오르고스 쿠라시스 씨도 “대를 이어 80년간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며칠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은 적은 처음”이라며 괴로워했다.
신문사들은 발행부수까지 줄이고 있다. 유력 일간지인 타네아는 발행 지면을 줄이면서 사설을 통해 “남은 종이가 며칠분밖에 없고, 은행이 문을 닫아 종이를 사올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은행의 영업 중단으로 해외 송금이 불가능해져 무역 거래는 멈췄다. 식품 수입업을 하고 있는 미할로스 씨는 “이번 주 들어 더이상 식품을 외국에서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 계좌에 식품 수입을 위한 충분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송금 제한 조치 때문에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광고에 의존해 아동 의류를 팔았던 마리에 팔란디얀락세브스키 씨는 “그리스 신용카드 회사가 갑자기 신용공여를 할 수 없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며 “구글에 광고비를 지불하지 못하게 돼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업들 중에는 국민투표가 시행되는 5일까지 강제 휴가를 실시하는 곳이 많다. 대중교통도 연료 절감을 위해 운행 횟수를 줄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