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 운영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얼굴을 마주해 관심을 모았다. 청와대는 국회 운영위의 피감기관이다. 그럼에도 운영위원장인 유 원내대표를 박 대통령이 ‘거부’하는 바람에 2일로 예정됐던 결산안 심사와 업무보고가 연기되는 등 파행이 빚어졌다. 국회로 불려온 이 실장에게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의 유승민 찍어내기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조금 비약이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출석했으니 유 원내대표를 청와대가 인정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여기서 말씀드릴 게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여당 원내대표를 거부하는 박 대통령의 상황과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여당 원내대표 한 사람의 거취 문제가 여권의 자중지란을 넘어 국회 파행까지 일으키는 현 상황은 조속히 타개되어야 한다. 어제 국회에서 “대통령과 언제든 독대가 가능하다” “대통령에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한다”고 장담한 이 실장이 꽉 막힌 당청 관계를 풀지 못한다면 누가 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여론조사 지지율뿐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어제 한국갤럽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는 ‘잘한 일’(36%)이라는 응답자가 ‘잘못한 일’(34%)보다 오차범위 안에서 많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국민이 심판하라”고 사실상 사퇴를 요구한 유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사퇴해선 안 된다’(36%)는 응답이 ‘사퇴해야 한다’(31%)보다 우세했다.
국정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대통령과 여당이 서로 완승을 노리고 자존심 대결을 펴는 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의 신의를 저버린 정치’다. 이 실장은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모양새 있는 일보 후퇴를 진언해 국정 정상화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