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권력자들이다. 이들은 질투와 원한, 방종과 과욕으로 파멸에 이른다. 당시 연극은 도시 전체가 들썩거리는 인기 행사였다. 국가가 모든 경비를 대고 ‘코라구스’라는 후원자가 또 큰돈을 지원했다. 기득권층 주도의 행사에서 권력의 몰락을 그린 작품들이 공연된 것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높은 수준을 말해준다. 그리스 비극이 성행한 기원전 5세기 이후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비극은 번영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풍요의 산물이었다.
▷국가부도를 당한 그리스가 애처로울 정도로 휘청거리고 있다. 외국과의 거래가 끊겨 수입 생필품은 바닥이 났고 대중교통은 운행 횟수를 줄였다. 먹을 게 없어 밤늦게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도 목격된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사회는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부유층은 남의 일처럼 무관심하다. 선구적으로 민주주의를 일구고 불멸의 문화를 창조한 그 현자(賢者)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