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흔적 청소대행 ‘바이오해저드’
“하아.”
남성의 한숨 소리에 범죄 현장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 대표 김새별 씨(40)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집주인이자 살해당한 아내의 남편 A 씨다. 16평짜리 작은 아파트 안은 여느 가정집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 걸음 안으로 들어선 곳에 있는 방 바닥은 온통 검붉은 색깔이었다. 피해자가 흘린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경찰 과학수사대가 범인의 지문을 채취하기 위해 뿌린 검은 가루는 화재 흔적처럼 싱크대 손잡이며 조명 스위치, 책상, 바닥, 젖병소독기 등에 남아 있었다.
올해 1월 29일 남편이 부부싸움 도중 부인을 흉기로 찌른 살인사건 현장에서 바이오해저드 직원이 혈흔청소기로 바닥에 말라붙은 혈흔을 제거하고있다. 혈흔청소기는 딱딱하게 굳은 피를 분해하는 약품을 내뿜으며 혈흔을 빨아들인다. 바이오해저드 제공
김 대표는 직원 임명민 씨(35)와 청소 준비를 시작했다. 5월 30일 이들이 찾은 경기 김포시의 한 아파트는 20대 주부 최모 씨(24)가 모바일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알게 된 이모 씨(27·구속)에게 살해된 현장. 아이가 안방에서 자는 사이 범인은 작은방에 있던 최 씨의 배와 목을 흉기로 9차례나 찔렀다. 김 대표의 바이오해저드는 살인 사건과 같은 범죄 현장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두 남자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둘은 익숙한 듯 방호복과 마스크, 덧신을 신고 검은 상자 7개를 현관 밖에 펼쳤다. 세정제, 탈취제 등 수십 가지 청소약품이 보인다. ‘뭐가 이렇게 많냐’고 묻자 김 대표는 “일반 청소랑 크게 다를 건 없다. 사실 피 닦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범죄 현장 청소의 핵심이 혈흔 청소라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혈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또한 혈액 속 세균이나 감염성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될 수도 있다. 그는 “백혈구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피까지 닦아야 하기 때문에 혈흔 반응제를 이용해 한 방울의 피도 남김없이 닦는 게 중요하다”며 장갑을 끼었다.
김 대표가 검은 박스에서 주황색 소독기를 꺼내 전원 버튼을 누르니 소독가스가 순식간에 16평 아파트 전체를 덮었다. 이들은 혈흔과 부패물질이 묻어 있는 쓰레기를 버릴 의료폐기물 전용 박스를 펼쳐 놓고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작은방 바닥에 말라붙은 피해자의 피 위로 혈흔반응제를 뿌리자 하얀 거품이 일어났다.
“우리가 피와 지문 채취 가루만 치우는 건 아니에요.” 청소를 하던 김 대표가 말했다. 그의 손에는 빨간 핸드백과 도장, 증명사진, 화장품 등이 들려 있었다. “피해자를 떠올리게 하는 흔적, 기억, 추억, 그런 걸 청소하는 거죠. 범죄로 목숨을 잃은 사람을 떠올리는 건 가족으로서 고통스럽잖아요.” 빨래건조대에 걸린 다 마른 옷가지를 끌어내리며 말했다. 이날도 가장 먼저 치워달라고 부탁받은 건 피해자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들이었다.
두 사람이 안방 장롱에 있던 피해자의 옷가지를 20L짜리 검은색 쓰레기봉투 15개에 나눠 담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들이 모자에서부터 미키마우스 비치룩, 바바리코트, 패딩 점퍼까지…. 사계절이 한순간에 펼쳐졌다. 아이의 사계절이 지나가는 데엔 3분이면 충분했다. 검은 봉투 세 개가 더 나왔다. 김 대표는 바닥에 떨어진 배달음식 전단지, 영수증, 구석에 굴러다니는 아세톤까지 다 주워 버리고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도 깔끔히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침대 위에 굴러다니던 인형을 바라보던 김 대표는 잠시 망설이더니 손으로 툭툭 헝클어진 인형 머리를 정돈해 화장대 위에 뒀다. “혹시 아이가 찾을지 몰라 둬보는 거예요. 엄마가 사준 거면 버리겠죠.” 그는 남편이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던 머그잔은 물론이고 싱크대에 있던 모든 그릇을 포대에 쓸어 담았다.
2차, 3차 소독까지 마치니 비로소 청소가 끝났다. 오전 11시 반쯤 시작해 3시간 가까이 걸렸다. 한 가족의 평화롭던 일상은 검정 비닐봉지 20여 개에 담겨 1t 트럭에 실렸다. 잠시 후면 폐기물 처리장에서 모두 소각 처리된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저희는 피해자 가족이 여기 들어와 다시 살 것을 생각해 깨끗이 치우는데, 사실 대부분 이사를 가버립니다. 누가 살고 싶겠어요. 슬프고 억울하기만 하지.”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가 ‘김포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의 물건을 모두 꺼내 정리하고 있다. 장롱에 있던 부부의 옷가지는 30분 만에 쓰레기봉투 15개에 담겼다.
김 대표는 2009년 바이오해저드를 설립했다. 원래 그는 12년 동안 서울 도봉구의 한 병원에서 장례지도사 일을 했다. 간혹 그에게 ‘집에 부패가 심한 시신이 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왔다. 그는 부탁을 받고 치운 몇몇 고독사 수습 현장 사진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던 중 블로그를 통해 누군가 김 씨에게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너무 슬퍼서 치우지 못하겠다’는 쪽지를 보냈다. 사연은 이랬다. 병든 어머니를 수발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줄 미음을 들고 가다 그만 쓰러진 것. 거동을 하지 못하던 어머니도 그대로 굶어 죽었다. 아들은 도무지 부모님이 돌아가신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이런 현장을 치워줄 누군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다.
창업 초기엔 고독사 청소를 주로 했다. 고독사의 경우 길게는 3개월 동안 방치되기도 하기 때문에 시신에서 풍기는 냄새가 일반적인 범죄 현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하다. 시체를 먹고 자란 구더기가 벽지 안쪽을 타고 들어가 천장에서까지 나온 적도 있다. 벽지와 장판은 물론이고 콘센트까지 분해해 구멍을 파고 들어간 구더기를 제거해야 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 현장을 찾아다니다 보니 볼 꼴 못 볼 꼴 다 본다”고 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부패가 많이 돼 악취가 심하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갔다. 전기장판을 켜둔 채 숨을 거둔 탓에 부패와 악취가 심했다. 그런데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아들이 현장을 계속 지키고 서 있었다. 김 씨는 속으로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현장을 지켜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전기장판을 들춰보니 5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했다. 아들은 맨손으로 악취가 밴 돈을 쓸어 담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혼자 쓸쓸히 생을 마감한 후에야 찾아온 아들의 눈에 자식을 그리워했을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듯해 씁쓸했다고 한다.
바이오해저드 특수청소는 범죄 피해 현장을 다니며 현장 청소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2009년 두 명에 불과했던 직원은 올해 9명으로 늘었다. 이중 3명은 장애인, 고령자 등 취약계층이다. 바이오해저드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바이오해저드는 2013년부터 ‘강력범죄 현장 청소 지원사업’ 대상 업체로 선정돼 법무부로부터 연간 약 3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기 시작했다. 이들이 그동안 지운 강력범죄 현장은 2013년 34곳, 2014년 44곳이다. 2015년에는 5월까지만 총 18건의 현장에서 흔적을 지웠다. 이들이 한 번 출동할 때마다 받는 금액은 대개 70만∼80만 원 선이다. 금액은 사건이 벌어진 공간의 넓이와 지문 채취 가루가 뿌려진 부분의 면적을 합해 계산하는데 일반적으로 6∼8평 정도가 나온다.
바이오해저드는 전국 각 지역 58개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중 강력범죄가 많은 25개 센터와 계약을 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기 안산은 물론이고 부산, 제주도까지도 간다. 현장 청소비용 외에 추가로 지원되는 교통비는 없다.
“마음이 편치 않아 매일 나가지는 못해요. 흥건한 피, 널브러진 옷가지 등 뉴스에 나온 사건이더라도 현장에서 보면 그 당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죠.”
그는 범죄 피해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단 2명이던 직원은 9명까지 늘었다. 이 중 3명은 취약계층인 장애인, 고령자다. 2013년에는 일자리를 창출한 공로로 서울시에서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그는 바이오해저드가 더 알려져야 한다고 했다. 2013년부터 법무부 지원도 시작됐지만 일선 경찰도, 피해자도 모른 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범죄 현장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유족들에게 저희 일은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범죄 현장 청소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또한 여전하다. 어느 겨울 차 앞 유리에 얼어붙은 눈을 녹이려 뜨거운 물을 뿌리는 김 대표에게 한 이웃은 “더러운 차를 어디서 닦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따가운 눈총 때문에 계약기간을 남기고도 사무실을 이전한 것도 여러 차례다. 지금은 그만뒀다는 한 직원의 부모님은 “차라리 빌어먹고 살지 그런 일을 하느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인 걸요. 범죄 피해자가 없어지면 자연히 없어질 테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일하렵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