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구제금융안 찬반투표 D-1
5일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국민투표 시행을 앞두고 그리스가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뉜 그리스 국민은 곳곳에서 충돌하며 일촉즉발의 긴장감까지 감돌고 있다.
3일 수도 아테네 도심에서는 추가 긴축을 요구한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네(NAI·예)’ 집회와 거부하자는 ‘오히(OXI·아니요)’ 집회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네’와 ‘오히’ 집회는 물론이고 무효표를 찍어야 한다는 집회까지 열렸다.
그리스 전역의 도로에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의 사진 위에 “5년간 그는 당신의 피를 빨았다. 이제 그에게 노(NO)라고 말하라”고 적힌 반대 진영의 포스터가 나붙었다. 여기에 “그리스에 예스(YES), 유로에 예스”라는 찬성 캠페인 포스터도 경쟁적으로 나붙었다.
그리스 국민의 의견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마케도니아대 사회경제조사연구소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43%는 채권단 제안에 반대하고, 42.5%는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리스 일간지 에트노스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찬성이 44.8%, 반대가 43.4%였다.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 재개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 부채의 탕감(헤어컷) 필요성을 인정한 보고서가 3일 보도돼 파문이 일었다. IMF가 공식 문서에서 부채 탕감을 명시한 것은 처음으로 그리스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치프라스 총리는 TV 인터뷰에서 “IMF도 그리스 부채 20%를 헤어컷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며 “국민투표에서 반대로 결정된다면 바로 브뤼셀로 갈 것이며 48시간 안에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은 새로운 기초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 과정이 오래 걸리고 험난할 것”이라고 이를 부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국민투표 후 협상이 재개돼도 채권단이 치프라스 총리와 합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나오면 치프라스 총리가 물러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 경우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기술관료 주도의 ‘임시정부’와 협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은행의 현금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콘스탄틴 미칼로스 그리스 상공회의소 회장은 “그리스 은행의 현금보유액이 5억 유로(약 6225억 원)까지 줄었다”고 말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그리스 정부가 하루 인출 제한을 60유로에서 20유로로 낮추는 방안에 대해 벌써부터 검토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