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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인류 음악사

입력 | 2015-07-04 03:00:00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지음/360쪽·1만5000원·돌베개




쉰세 살 된 통찰력 있고 유명한 음악평론가가 낸 뜻밖의 첫 책.

모차르트, 베토벤부터 윤심덕, 송창식까지 인류 음악사의 팔면봉을 독특한 각도에서 쳐다봤다. 제목처럼 인류 음악사를 통째로 전복(顚覆)할 이야기는 아니다. 비싼 전복(全鰒)만큼 맛은 있다.

탁월한 이야기꾼은 야속한 셰프. 얘깃거리를 도미 배처럼 단칼에 툭 가르든가 아니면 차라리 빙빙 에둘러 읽는 사람 애간장을 태운다. 이를테면 저자는 트로트와 반일에 대해 쓴다. 그러다 능구렁이처럼 음악의 담장을 넘어간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일본과 맞붙게 되자 ‘지면 현해탄을 다시 건너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승리한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이야기를 세 페이지나 펼친다. 2013년부터 서울 문화공간 ‘벙커 1’에서 진행한 같은 제목의 강의를 녹음해뒀다가 그 내용을 글로 다시 풀어낸 덕인지 글자가 귀에 와 붙는다. ‘피파’ ‘홈 앤드 어웨이’ ‘동대문운동장’에까지 정색하고 단 촘촘한 주석은 유머인지 뭔지 모르지만 정성스러운 디테일.

저자는 1917년을 재즈의 출발, 박정희 탄생, 이광수의 ‘무정’ 출간, 러시아혁명 발발로 꿰매고, 1964년에서 비틀스 신드롬과 이미자 열풍(‘동백아가씨’)을 매직아이처럼 동시에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신선한 바느질에 열중한다. 대중음악을 ‘가요’라 부르는 건 잘못이라 주장하고, 윤심덕 김우진의 자살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야 첫 책이라니. ‘맛집’에서 요리가 너무 늦게 나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