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미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찬반 결과와는 별도로 20일까지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긴급유동성지원(ELA)을 받느냐 마느냐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당장 20일까지 35억 유로(약 4조 3364억 원)의 채무를 ECB에 갚아야 한다. 이날까지 지원을 받지 못하면 은행 부도와 예금자 손실 분담(헤어컷) 등의 사태가 발생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민 투표는 2차 구제금융 연장을 위해 채권단이 마련한 제안에 대해 그리스 국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2차 구제금융 시한이 30일로 끝났기 때문에 새로운 조건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스가 제안한 이른바 3차 구제 금융안이 협상의 재료가 될 공산이 크다. 그리스는 기존 채권단의 제안 중 부가가치세 할인 폐지와 상향 조정된 연금 지급 연령의 조기 적용 등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이를 수정해 제안해 둔 상태다. 채무탕감도 요구했다.
투표결과가 찬성이 우세했다면 채권단이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협상을 계속할 가능성은 낮다. 채권단의 많은 국가들이 치프라스 총리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프라스 총리가 스스로 물러나느냐 하는 점이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을 비롯한 여러 장관들은 투표 결과가 찬성이면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자신의 거취를 명확히 한 적이 없다. 만약 그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정치적 혼란으로 20일까지 긴급유동성을 지원받기 힘들어질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그가 물러나더라도 채권단이 여전히 집권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부와 협상을 할지, 아니면 과도정부와 대화를 할지는 미지수다. 채권단이 과도정부와 협상을 하고 싶어도 그리스 정치권의 상황을 고려할 때 과도정부 수립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투표 결과가 찬성으로 나오면 채권단은 20일에 필요한 유동성을 지원하는 ‘브릿지 론’을 우선 제공하고, 8월 이후 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가 나오면 협상은 더 꼬일 수밖에 없다. 치프라스 총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채권단이 그리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리스 정부에 우호적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마저 반대 결정은 유럽은 떠나는 선택이라고 밝혀뒀기 때문이다.
ECB의 유동성 공급이 끊기면 20일 그리스는 채무불이행으로 실질적 디폴트에 처하고, 그리스 정부는 유로화 사용을 포기하고 새 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의 길로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