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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한국기업, 기회포착보다 환경변화 감지능력 키울 때

입력 | 2015-07-06 03:00:00

삼성-LG 등 빠른 추격자로 성공… 남보다 앞서 시장 창출엔 취약
혁신 통해 새로운 길 개척해야




짧은 시간에 사라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세상이 바뀌어도 오래도록 살아남는 장수 기업이 있다. 장수 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 많은 경영 전략 분야 학자들은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ies)’이 기업의 수명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대답한다. 동적 역량이란 기업이 가진 다양한 자원과 능력을 환경 변화에 따라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힘을 말한다. PC를 주로 만들던 애플이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자원과 역량을 재구성해 아이팟이나 아이폰 등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장악한 게 동적 역량의 위력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이 동적 역량을 확보하려면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한국 기업은 동적 역량의 구성 요소, 즉 환경 감지와 기회 포착 가운데 어떤 부문에서 더 뛰어날까. 단연 기회 포착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피처폰 시장에서 세계 2위였지만 피처폰의 다음 단계가 무엇이 될지 몰랐다. 하지만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후 스마트폰 시장의 가능성이 확인되자 그룹 차원의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스마트폰을 개발했다. 그 후 갤럭시S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애플의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LG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의 기업들도 모두 이런 경로를 거쳐 성공을 거뒀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에 가장 취약한 역량은 무엇일까. 남보다 앞서 환경의 기회를 인지하고 평가하는 환경 감지 역량이다. 환경을 감지한다는 것은 가능성을 읽고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고 만들어 가는 활동을 의미한다. 한국 기업들은 과거 성장 과정에서 시장과 기술의 기회, 그리고 위협을 스스로 규명하고 평가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추격하고 모방할 대상이던 선진 기업들의 발전 경로를 빨리 뒤따라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기회를 규명하거나 평가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그러나 환경의 기회와 위협에 대한 감지를 선진 기업에 맡겨 두는 전략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국내 대표 기업들은 선진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게다가 급격한 환경 변화가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는 빠른 추종자 전략이 최선의 선택도 아니다. 환경 감지 역량이 결여된 채 기회 포착 역량만으로는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상황을 보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게 느껴진다. 소위 신수종 사업을 추진하면서 ‘향후 시장 규모가 얼마에 달할 것이다’라는 식의 예측을 근거로 의사결정을 하는 국내 기업이 많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서의 수요 예측은 필요하며, 또 가능하지만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플과 테슬라가 스마트폰과 세계 전기차 시장의 수요를 예측하고 시장에 뛰어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 기업들도 이제 새로운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선진 기업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모방과 기회 포착에 바탕을 두고 경쟁력을 키웠다. 하지만 계속 이런 방식을 고수했다간 중국 등의 후발 기업에 빠르게 추월당하고 말 것이다. 이제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자보다 빨리 기회를 감지해야 한다.

허문구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정리=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