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INVS 질병통제본부 호흡기전염병 총괄책임자 레비브륄 박사
《 프랑스 국립보건통제센터(INVS) 질병통제본부 호흡기 전염병 총괄책임자인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에게 한국이 메르스 사태를 겪게 된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나왔다. “한국이 주변국에 비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고통을 거의 겪지 않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사스를 잘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의료진과 시민들 사이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방심을 낳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부실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실제로 한국은 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3년 사망자가 한 명도 없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모범국’이란 칭호를 얻었다. ‘김치가 사스를 예방해줬다’는 설(說)이 주변국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었다. 》
프랑스 파리 외곽 생모리츠에 있는 국립보건통제센터(INVS) 질병통제본부에서 만난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 그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선 투명한 정보 공개와 소통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며 “평소에 준비된 나라만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는 바이러스 방역 시스템 면에서 선진국 중에서도 모범 국가로 꼽힌다.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이민자와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일찍이 각종 열대성 질병에 쉽게 노출돼 그만큼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국립보건통제센터는 1998년 광우병 위기 직후 창설된 곳으로 에볼라를 비롯해 메르스, 신종플루, 조류인플루엔자, 사스 등 호흡기 전염병에서부터 식품 오염에 이르기까지 각종 바이러스에 대한 경보를 내리고 추적하는 일을 총괄 지휘하는 정부기관이다.
지난주 파리 인근 생모리츠에 있는 본부를 찾았을 때 레비브륄 박사는 기자를 ‘작전상황실’로 안내했다. 1년 365일 24시간 가동된다는 방 안으로 들어서니 대형 스크린이 눈에 띄었다. 전국의 병원, 보건소, 소방서, 응급구조대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감염 정보를 실시간으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곳 상황실에서는 국내는 물론이고 지구촌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바이러스에 대해 검토하는 전문가 회의가 매주 열린다. 마침 스크린에는 ‘한국의 메르스 상황에 대한 현황분석’이라는 제목의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레비브륄 박사는 “상황실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2013년 5월 프랑스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였다”고 했다. 당시 북부 릴의 한 병원에서 아랍에미리트를 여행하고 돌아온 65세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자 상황실에 매일 50∼70여 명의 전문가들이 24시간 근무하며 바이러스를 추적했다. 환자와 접촉한 123명을 자가 격리시키고 이들에 대해 매일 2차례씩 체온을 측정하며 관리한 결과 확진 환자는 2명에 그쳤다. 그의 말이다.
그는 이어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어떻게 매뉴얼이 작동되는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브르타뉴 지방의 한 의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환자를 진료했는데 기침, 발열,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인다면 즉시 지역 보건소에 알린다. 그러면 바로 우리 본부나 지부(CIRE)에서 역학조사관이 파견되고 의심 환자의 샘플을 채취해 국립인플루엔자표준연구소로 보내 메르스 유전자 검사(PCR)를 한다. 의심 환자로 분류되면 즉시 전문 병원으로 보내 격리 조치한다. 이와 동시에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 리스트가 작성돼 경로 차단 작업이 펼쳐진다.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평소 모든 의료 종사자들이 사태 발생에 대비해 행동요령을 숙지해 즉각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병원 정보 초기에 공개해야 바이러스 확산 막아
―사태 초기에 병원과 환자에 대한 정보공개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
그는 이어 “이제 바이러스 대처를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시대가 되다 보니 바이러스 대유행과 같은 보건 위기도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이번에 메르스 경우를 통해서도 다시 깨달은 것이지만 바이러스가 확산된 후에야 움직이는 것은 이미 전투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다. 한 전투에서 졌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프랑스도 사스에 잘못 대처해 비난 여론이 높았었다. 그렇다고 당시 전문가들을 모두 해임했다면 이후 닥쳐올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이기려면 정밀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준비된 나라만이 이길 수 있다.”
기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황실’뿐 아니라 ‘협력 조정실(Salle de Coordination)’과 ‘결정실(Salle de decision)’이라고 적혀 있는 방이었다. ‘협력 조정실’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50여 명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즉석 토론을 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곳이라고 한다. 또 ‘결정실’은 격리조치, 접촉자 관리, 병원 폐쇄, 휴교령 등을 신속하게 내리는 장소이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대부분 의사 간호사, 약사들이지만 이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전문가 그룹은 수의사에서부터 사회학자, 기호논리학자, 통계학자, 인류학자, 미디어 전문가까지 포진해 있다. 바이러스 확산은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모든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대응하는 전문가들 간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수의사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동물을 통해 전염되는 여러 병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외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정보를 신속히 얻기 위해 언제든 해외로 파견돼 역학조사를 할 수 있는 ‘국제감시정보 전담팀’도 상시 가동하고 있다.”
○ “한국, 더이상 퍼질 가능성 낮다고 본다”
호흡기 전염병 예방 전문가인 레비브륄 박사는 1986년부터 WHO와 유니세프(UNICEF)에서 전염병 백신 개발과 예방접종 프로그램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1997년부터 통제본부에 합류해 전염병 예방 및 교육총괄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매우 논리적이고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설명을 들을수록 프랑스가 방역 선진국이라 불리게 되기까지 많은 고민과 이를 실현할 사회적 합의가 있었으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화제를 ‘메르스’로 돌렸다.
―메르스는 병원을 통해서만 감염이 되나. 가정 학교, 지하철 같은 일반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감염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메르스 데이터도 많이 축적되어 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병원 감염 확률이 제일 높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메르스가 학교나 지하철 등에서도 확산 능력을 가진 바이러스였다면 벌써 전 세계로 퍼졌을 것이다. 이는 한국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겨울 프랑스에서는 독감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독감과 메르스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올해 1∼2월 유행한 겨울독감으로 사상 최대인 1만1000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이 19%에 이르렀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이에 비해 메르스는 전염성 면에서 독감 바이러스보다 현저히 낮다. 우리 팀 연구 결과 메르스의 바이러스 생산력은 0.6으로 나타났다. 1보다 낮으면 대유행 병이 될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연구팀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미 다른 병을 앓고 있거나 노약자들이다. 그러나 건강한 젊은 사람도 감염되는 경우도 있고, 감염되고도 아무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과연 메르스 항체를 보유했는지 혈청학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30, 40대 젊은층은 감염 확률이 낮지만 일단 감염되면 ‘슈퍼 전파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 상황은 어떻게 보나.
“WHO와 프랑스 정부는 한국 여행에 대한 어떤 규제도 하지 않았다. 한국이 이대로 격리 조치를 잘 취한다면 더이상 퍼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여행객들이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문제는 없다고 본다.”
::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 ::
―1986년 세계보건기구 열대성 전염병
통제 프로그램 전문가
―유니세프 국제아동 예방접종 프로그램 진행
―개발도상국 보건부 백신개발 프로그램 참여
―1997년 프랑스 국립보건통제센터 전염병
예방 총괄팀장
―프랑스 보건부 사스, 메르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면역기술전문 자문위원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