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대한 예의’ 중 제일은 대통령으로 뽑아준 민의, 그 자체 취임하고 나면 국민, 당, 참모에 ‘대통령의 예의’ 지키는 게 순리 대통령은 ‘능력 리스크’ 아닌 ‘성격 리스크’에 빠져 있다 업무 스타일 바꿨으면 좋겠다는 국민의 거듭된 요구 외면 않는 게 지금 실천해야 할 ‘대통령의 예의
심규선 대기자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들으며 ‘대통령의 예의’를 생각한다. 대통령에 대한 가장 큰 예의는 대통령으로 뽑아준 민의(民意), 그 자체일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보다 ‘대통령의 예의’를 더 고민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예우에 불과하지만, ‘대통령의 예의’는 대통령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하고, 국민과 당, 참모들을 하나로 묶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예의’는 대통령의 능력이나 자질, 성과, 비전 등과는 별 관련이 없다. 소통, 공감, 배려, 정서 등 업무 스타일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이런 것 같다. 대통령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즉 외교, 안보, 대북정책 등은 지지할 만한데 오히려 대통령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 즉 인사나 소통, 당청 관계 등은 그렇지 못한 이 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은 지금 ‘능력 리스크’가 아니라 ‘성격 리스크’에 빠져 있다.
비서실장은 “3인방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도 들었다. 치욕적인 질문이다. 비서실장이 그런 걸 용납하지도 않겠지만 대통령이 누군가를 편애하는 것까지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운영위가 열린 날 오후, 김경재 대통령홍보특보는 채널A ‘쾌도난마’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만든 보고서는 정호성 비서관에게 바로 전달하는데, 이는 정무수석이 공석이어서가 아니라 그전부터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인지, 다른 특보들은 어떻게 하는지가 자못 궁금하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만나 보면 금방 안다. 대통령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칭찬할 준비, 대통령이 의외로 세세한 사안까지 꿰뚫고 있다고 놀랄 준비, 대통령의 의지에 비하면 내 소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모와 각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직을 걸고 바른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대통령의 매력에 눈이 멀어버린 이들이 그나마, 곤혹스러운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해주는 일도 ‘대통령의 예의’가 아닐까 한다.
유 원내대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나는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지지한다. 대통령은 인간적 분노를 표시했고, 법이 보장한 권한도 행사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당에 맡기고, 제2, 제3의 수는 갑 속에 넣어두는 게 옳다. 그것이 당에 대한 ‘대통령의 예의’라고 본다. 이 문제에 대해 여론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것도 대통령의 논리와 권한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특정인을 찍어내려는 방법과 정서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유 원내대표의 편도, 대통령의 편도 아니다.
다음 달이면 박근혜 정권도 반환점을 돈다. 하지만 정권의 성패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대통령의 능력이나 의지도 하등 의심받을 이유가 없다. 다만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은 점수를 잃었다. 대통령은 내정, 외교, 대북관계 등에서 ‘신뢰’라는 말을 자주 쓴다. 국민도 대통령의 신뢰를 원한다. 스타일을 바꿔보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신뢰가 필요한, 그것도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당장 신뢰의 위기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 그게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예의’다.
심규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