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대동맥 판막 모습이 담긴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물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박 교수는 “수술이 어려웠던 고령 환자에게 국내 최초로 대동맥 판막 스텐트 시술을 한 것이 ‘내 생애 최고의 의술’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첫 환자는 당시 85세였던 조모 씨였다. 조 씨는 어느 날 “날카로운 게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며 증상을 호소했다. 갈수록 숨이 가빠지는 증세가 심해져 10m도 걷기 힘들었다.
병원을 찾은 조 씨는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에서 나온 피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대동맥 판막이 좁아져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류가 충분하게 나가지 못하는 병이다. 이 병이 있는 환자는 어지럼증이나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심하면 졸도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오랫동안 준비한 대동맥 판막 스텐트 시술이 성공하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봤다. 2002년 유럽에서 처음 성공한 이 시술법을 그는 2008년부터 공부했다. 2009년 2주 동안 미국 컬럼비아대 병원에서 시술법 연수도 받았다. 2010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이 시술에 대한 승인도 난 상태였다. 박 교수는 “국내에서는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자신이 있었다”며 “환자의 절박함을 고려할 때 보호자들을 설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환자 가족은 의견이 엇갈렸다. 조 씨의 7남매 중 막내는 “처음 시도하는 시술인데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느냐”며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큰아들은 “의료진을 믿어 보자”며 박 교수팀에 힘을 실어 줬다.
2010년 3월 29일 오전 8시 5분 시술이 시작됐다. 박 교수는 바늘 지름 7mm 주사를 환자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주사액 속 인공 판막이 담긴 스텐트가 혈관으로 들어갔다. 혈관을 타고 올라간 스텐트가 망가진 판막을 밀어내고 인공 판막을 제자리에 설치하는 순간 의료진은 환호성을 질렀다.
박 교수는 “걸린 시간은 한 시간밖에 안 되지만, 시술은 난이도가 10점 만점에 9.5 정도에 이를 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외과, 내과 등 여러 진료과의 협업이 중요하며, 의료진의 숙련도가 높아야 한다. 환자의 판막 크기와 혈관 석회화 정도에 따라 스텐트 사이즈를 세심하게 정하는 등 사전 준비 과정도 복잡하다.
박 교수팀은 첫 수술 이후 200여 건의 대동맥 판막 스텐트 시술을 했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로 퇴행성 질환인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동맥 판막은 높은 혈압을 견디며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신체 부위라 그만큼 노화가 나타나기 쉽다. 나이가 들수록 탄력이 떨어지고 딱딱해져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박 교수는 “고령의 환자는 수술하기 어려운 대동맥 판막 협착증에 대해 수술 아니면 약물치료라는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 스텐트 시술, 성공률 높고 부작용 거의 없어 ▼
대동맥 판막 협착증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 확률이 높은 질환이다.
미국과 유럽의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30% 정도에서 대동맥 판막 경화증이 나타난다. 이 중 약 2%는 판막이 좁아지는 협착증이 함께 나타난다. 60세 이상인 경우 10년이 지날 때마다 2배씩 발생 위험도가 높아진다. 또 여성보다 남성이 발병 확률이 높으며, 흡연자와 고혈압이 있는 경우 고위험군에 속한다.
증세가 나타나면 수술이 필요하다. 수술을 받지 않는 경우 50%가 증상이 나타난 뒤 5년 이내에 사망한다. 하지만 수술 받을 정도의 심한 협착증 환자들은 대개 고령인 경우가 많아 가슴을 여는 큰 수술을 하기에 위험도가 높다. 수술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대동맥 판막 스텐트 시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시술법을 시행한 유럽 32개 병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술을 받은 환자의 평균 나이는 80세 이상이었다. 성공률은 95% 정도로 매우 높았다. 가슴을 절개하지 않기 때문에 통증이나 운동장애 등의 부작용도 거의 없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