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위험하다]<中>부모의 역할
낙담한 A 군은 며칠 뒤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새벽에 친구에게 보냈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불길한 느낌을 받은 친구가 곧장 A 군의 어머니에게 이를 알렸다. A 군의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했고, 아들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지만 A 군은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였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살의 상당수는 부모의 관심만 있으면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와 자녀 간의 접촉이 적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부모 가정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더 높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초기 자살 징후를 파악하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청소년 자살에서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은 이미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는 아이들. 이들은 자살을 계속해서 시도하며 방법 역시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극단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평소 특별한 문제가 없던 아이들의 경우도 부모가 봐서 유독 우울한 상태가 지속된다고 판단될 땐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 부모가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전문가 상담 등을 알아보라는 뜻이다. 홍 교수는 “최근에는 아이와 부모 모두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됐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활용할 경우 비교적 쉽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B 양(16)의 경우 지난해 초등학교 1, 4학년과 중고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약 3%에게서 나타나는 ‘자살 위험 징후’가 있다고 파악됐다. 해당 결과를 통보받은 담임교사는 B 양과 수차례 상담을 했고, 불안감과 우울감이 크게 느껴진다는 평가를 내렸다. B 양은 결국 부모와 함께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처음 B 양의 부모는 ‘원래 우리 딸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B 양은 칼로 손목을 자해하는 상황을 상상하고, 스스로 목을 졸라 본 경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B 양의 부모는 딸의 이야기를 들은 뒤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하자’며 다독이고 상담 치료도 함께 받았다. 6개월 뒤 B 양은 우울증 완치 판정을 받았고 현재는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홍창형 아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정서적 교감을 나누면서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주라”고 조언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