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시설 세계유산 등재문에 반영 “희생자 기릴 안내센터 설치하겠다”
일본 정부대표단은 5일(현지 시간)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는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혹독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으며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유산위원회는 ‘이 발언문에 주목한다’는 주석을 담은 결정문을 채택하고 일본이 신청한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노역했다는 점을 일본 정부가 최초로 국제사회에 공식 언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2017년 12월까지 위원회 산하 기구인 세계유산센터에 자신이 취한 조치에 대한 경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 “자기 의사 반해 노역… 日 조치 주목” ▼
등재 결정문 주석에 반영 ‘간접 시인’
일본은 일제강점에서 비롯된 청구권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고 과거사에 대한 법적 책임도 없다며 ‘강제노동’에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상 기업들이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지 중 상당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일본은 산업시설 등재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제한해 신청하는 등 1940년대에 이뤄진 강제징용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역사의 명암이 모두 알려져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에 국제사회가 동조했다. 특히 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이 지난달 ‘한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등재 논의를 연기할 수 있다’는 완고한 태도를 취하면서 분위기가 반전했다. 21개 위원국(한일 포함)으로 이뤄진 위원회도 표결로 가지 말고 한일 간에 해법을 찾으라고 촉구했다.
한일 양국도 표결로 가는 파국과 같은 상황은 피해야 하며 사전 협의를 통해 등재를 결정하자는 공동 인식을 갖고 있었다. 외교 당국자는 “광복 이후 처음으로 한일 문제를 놓고 국제무대에서 표 대결을 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 큰 외교적 부담”이라고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어느 한쪽이 치명타를 입고 한일 관계는 회복 불능의 긴장 관계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내년부터 유산위원회 위원국 자격을 잃는 일본이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위원국 자격은 6년 뒤에나 돌아온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이 극한 대립을 피하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냈다. 이번을 계기로 한일이 선순환적 관계 발전을 도모해갈 수 있길 바란다”며 이번 협상 결과를 “우리의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평가했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한때 한국 측에 자신이 준비했던 발표문을 적대적으로 바꾸고 표결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나타낼 만큼 완강하게 협상에 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직접 이 문제를 챙기면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례적으로 4일이나 서울에 머물며 한국 정부와 비공개 교섭도 했다.
일본이 강제노동에 대해 홍보하는 후속조치 이행 여부는 2018년 열리는 42차 세계유산위원회가 평가한다. 이론적으로 위원회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와 해제를 모두 결정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등재가 번복된 것은 1978년 이 제도가 시작된 이래 1건밖에 없었다. 등재 여부에 대한 판단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느냐’는 기술적 측면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일본이 약속을 이행 하지 않더라도 세계문화유산 자격을 뺏기는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