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드라마 ‘심야식당’(SBS)이 4일 처음 그 ‘정체’를 드러냈다. 혹평이 쏟아졌다. “콘셉트는 사왔는데 철학은 사올 수 없었겠지” “어색해서 보는 내내 불편하다”…. (시청자 게시판)
도쿄 뒷골목을 서울 종로 뒷골목으로 설정한 것은 그럴싸했다. 1회 김에 싸 먹는 가래떡 구이와 2회 메밀전이 나온 것도 서민적이면서 개성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일식인지 한식인지 영 국적불명인 식당 인테리어나 주인의 복장, 그냥 ‘아저씨’나 ‘주인장’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마스터’라고 부르는 어색한 호칭도 뭐, 원작을 반영한 것이라 치고 얼렁뚱땅 넘어가 보자.
하지만 한국판은 ‘심야식당’의 리메이크라고 하기엔 몇 가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우선 음식드라마면서 음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원작인 일본 ‘심야식당’은 요리 과정이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꼭 보여준다. 한국판에는 이런 장면이 없다. 가래떡구이를 조미 김에 싸먹으면 어떤 맛이 나는지, 메밀전에는 무슨 속 재료가 들어가 어떤 맛을 내는지 짐작할 길이 없다. 음식 맛이 와 닿지 않으니 음식이 주는 의미도 와 닿지 않는다. 2화에서 “마스터의 메밀전은 따뜻하고 진솔해서 좋았어요”같은 대사가 억지스러워진다.
등장인물이 바뀌면서 원작의 의미가 퇴색된 것도 문제다. 일본판 ‘심야식당’에는 야쿠자, 건달, 게이바 마담, 스트립걸, 퇴물 포르노 배우 등이 등장한다. 남들이 잠든 시간까지 일을 하거나 자정이 넘어서야 밥집을 찾을 수 있는, 소외되고 지친 이들을 따뜻한 음식 한 그릇으로 위로한다는 것이 원작의 주요 메시지다. 그런데 한국판에서는 원작의 주요 인물인 게이바 마담 고스즈가 빠졌다. 그 이유에 대해 제작진은 2일 제작발표회에서 “(한국에선) 소수자를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적은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대신 직업이 불분명한 동네 아저씨 ‘김 씨’와 대를 물려 한의원을 하고 있는 한의사 ‘돌팔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2015년 한국에서 ‘마음의 허기’에 시달리는 소외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명한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일은 늘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소규모로 개봉한 일본 극장판이 한 달도 채 안돼 관객 10만 명을 모으고, ‘먹방’이 대세인 상황에서 원작의 이름값에 적당히 조미료만 치면 성공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형 평면 TV가 떡하니 달려 있고 고급 오디오가 놓인 한국판 ‘심야식당’의 풍경은 웃기는 것조차 실패한 시트콤에 가깝다. 귤이 현해탄을 건너 탱자가 됐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