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원빈 · 이나영의 결혼 소식과 함께 디자이너 지춘희가 또 다른 화제의 축으로 떠올랐다. 이나영과 10년 넘게 친분을 이어온 그가 결혼식 전 떠돈 소문 그대로 신부를 위한 웨딩드레스를 직접 지은 것. 지난 5월 결혼한 장윤주도 지춘희의 드레스를 입었다. 유명인사들 중 ‘지춘희 마니아’가 유난히 많은 이유와 그가 스타들의 멘토가 된 인연, 심은하 · 이보영 · 장윤주 · 이나영으로 이어진 지춘희 웨딩드레스 변천사를 짚어봤다.
여배우와 패션디자이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스타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의상이고, 디자이너 역시 자신의 옷을 완벽하게 소화해주는 사람에게는 남다른 애정이 가기 마련. 그렇다고 이들 사이에 비즈니스 관계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안목과 취향, 즉 옷에 대한 ‘철학’이 맞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터놓고 인생을 논할 만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아하면서도 개성 있는 디자인, ‘숨 쉴 공간까지 생각해서 재단하는’ 섬세함으로 각광받고 있는 지춘희 디자이너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다. 심은하, 고현정, 이영애, 황신혜, 최지우 등 당대 최고의 스타가 그의 옷을 입고, 패션쇼 시즌마다 늘 많은 명사들이 그의 작품을 보러 온다. 톱스타 원빈과 깜짝 결혼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나영과 지춘희의 인연 또한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지난 5월 초 연예계에는 증권가 지라시를 통해 원빈과 이나영이 곧 결혼 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나영이 지춘희 디자이너에게 웨딩드레스를 의뢰해 가봉까지 마쳤다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결혼식에서 이나영이 지춘희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둘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03년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주선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지춘희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온 이나영 덕분에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다고 한다. 지춘희와 이나영의 인연이 처음 조명된 건 2012년, 평소 대외 활동이 잦지 않은 이나영이 지춘희 패션쇼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사실 그보다 앞선 2009년, 개그우먼 박경림이 한 일간지에 연재한 지춘희 인터뷰 기사를 봐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지춘희는 “요즘 가장 정이 가는 연예인은 누구냐”는 박경림의 질문에 “이나영”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엔 나영이가 가장 나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 나도 마음을 많이 줘. 나영이 만나면 처음엔 옷 얘기도 안 해. 쓴소리를 먼저 해주느라고. 좋은 얘기하다가 돌려서 나중에 단점을 얘기하는 것보다 이게 머리가 덜 아프잖아”라고 말했다.
이나영 · 원빈 부부 외에도 지춘희를 자신의 멘토로 여기는 셀레브러티들이 많다. 특히 심은하, 고현정, 최명길, 강수연 등은 오래전부터 ‘지춘희 마니아’임을 자처한다. 2005년 결혼 당시 고전적이고 로맨틱한 지춘희의 이브닝드레스를 입어 화제를 모은 심은하는 이후 연예 활동을 접은 뒤에도 그에게 꾸준히 소식을 전해오는 지인이고, 고현정 역시 “이혼 후 쉬는 동안 지춘희 선생님과 계속 연락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번 맺은 인연과는 오래도록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만의
비결은 뭘까.
입이 무겁고 소박한 라이프스타일로 셀렙 사이에서 인기
지춘희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입이 무겁다’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연예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생활 관련해서 보안 유지가 철저하다고. 물론 이번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 관련해서는 지라시 때문에 곤혹을 치르긴 했지만, 지춘희는 당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언론에 끝까지 “사실무근”이라며 ‘하얀 거짓말’을 했다. 원빈과 이나영 예복도 철저히 비밀리에 작업했다고 한다. 미스지컬렉션 한 관계자는 “누구 드레스인지 직원들도 몰랐을 정도로 조용히 준비하셨다. 결혼식 이후에도 그와 관련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밝혔다.
지춘희의 또 다른 지인은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따뜻한 심성과 화려하지 않은, 오히려 소탈한 라이프스타일이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평했다. 도회적인 외모와 달리 충북 충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란 지춘희는 현재 살고 있는 서울 청담동 소재 단독주택에도 사과나무와 자작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담장 밑 땅속에 해마다 김장 김치를 묻고 된장, 고추장도 집에서 직접 담가 먹을 정도로 자연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지춘희는 그렇게 차린 소박한 밥상을 지인들과 나눠 먹길 좋아한다고. 지인들과 여행도 자주 다니는데, 이나영과는 중국 상하이와 강원도 동해로 여행을 떠나 옷 얘기는 하지 않고 음식 얘기만 실컷 하다가 왔다고 한다. 이나영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멋에도 맛에도 관심 없던 내가 지춘희 선생님 덕분에 옷과 음식에 눈을 떴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지춘희에게도 이나영은 작품에 영감을 주는 뮤즈임이 분명하다. 이나영의 무심함과 털털함, 소박함이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세계와 일맥상통하기 때문. 지춘희 역시 한 인터뷰에서 “유행에 무심하고 초연한 옷, 태평한 옷을 만드는 데 이나영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지춘희의 셀렙 웨딩드레스 변천사
유럽 공주풍, 심은하 드레스
2005년 정치가 지상욱 씨와 결혼한 심은하는 이브닝드레스로 지춘희의 의상을 입었다. 하이웨이스트 라인에 사랑스러운 레이스로 여성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줘 본식 때 입었던 베라 왕 웨딩드레스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심은하의 깔끔하고 청초한 이미지를 잘 살린 디자인인 데다 하얀색이 아닌 크림색을 선택해 심은하의 뽀얀 피부가 더욱 환하게 빛났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비 신부들 사이에서 심은하의 이브닝드레스가 회자되는 이유다.
크리스털 비즈로 아름다움 배가, 이보영 드레스
2013년 탤런트 지성과 웨딩마치를 울린 이보영도 지춘희에게 웨딩드레스를 선물받았다. 지춘희는 3명의 들러리를 위한 드레스도 직접 디자인했다. 이보영의 웨딩드레스는 어깨 라인이 시스루로 처리된 것이 포인트. 라운드 네크라인에 팔을 모두 가리는 긴 소매 드레스로 노출을 최소화했으며, 이보영의 청순한 매력과도 잘 어울렸다. 또한 크리스털 비즈 장식과 무게감 있는 귀걸이, 벨트 등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매치해 드레스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교회 예식에 제격, 장윤주 드레스
지난 5월 29일 4세 연하의 패션 사업가와 결혼한 톱 모델 장윤주도 지춘희 드레스를 입었다. 튜브톱의 기본 형태에 시폰 소재 긴팔 소매를 더한 작품으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만큼 쇄골을 덮는 등 노출을 최소화했다. 레이스 사용도 자제했는데, 소매에만 약간의 포인트를 줬을 뿐 화려함보다는 A라인 실루엣으로 단정함을 강조했다.
온 몸을 감싼 꽃무늬, 이나영 드레스
소박하면서도 낭만적인 ‘밀밭 결혼식’을 위해 웨딩드레스에 이나영의 소녀 감성을 그대로 담았다. 결혼식 하루 전에 선보인 장윤주 드레스와 윤곽은 비슷하지만 상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꽃무늬 레이스로 클래식함과 여성스러움을 더했다. 또한 바닥에 닿는 긴 기장의 베일과 머리에 쓴 화관, 신부 손에 들린 들꽃으로 소박하면서도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글 · 김유림 기자|사진 ·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이든나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