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이 발레의 원작 이야기는 2세기경 그리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양 치는 사내와 처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죠. 제가 좋아하는 3부 시작 부분은 해적에게 납치되었던 처녀 클로에가 무사히 풀려나 새벽이 밝으면서 연인과 행복하게 재회하기 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라벨은 20세기 초 관현악의 최고 거장 중 한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도 그가 훌륭하게 관현악으로 편곡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이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도 헤매듯 용솟음치며 가라앉는 현악, 휘파람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전해 주는 목관, 태양과 같이 강렬한 금관이 우리를 도도하고 밝고 커다란 소리의 화폭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무대는 에게 해의, 터키에 가까운 레스보스 섬입니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곳이죠. 강한 남성성을 시에 드러낸 여성 시인 사포의 출생지였기 때문에 동성애와 연관짓게 되었지만, 오늘날의 이 섬 주민들은 “동성애와 특별한 연관은 없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떠올려 보니 최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성공한 일이 떠오르네요. 이래저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생각할 일이 많은 2015년 여름입니다. 한창 꼬여 있는 그리스 경제 문제도 잘 풀려서 남쪽의 낙천적인 사람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윤종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