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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펜싱대표 “끔찍했던 지진 공포, 선수촌도 아래층 부탁”

입력 | 2015-07-07 03:00:00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참사 딛고 출전 네팔 펜싱대표 라마




네팔 지진 피해를 딛고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펜싱 플뢰레 개인 예선에 출전한 산지프 라마가 6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경기를 마친 뒤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광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저만 좋은 곳에서 자는 것 같아 미안할 뿐입니다.”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한 네팔 펜싱 대표팀의 산지프 라마(19)는 집이 없다. 4, 5월 80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네팔 강진 때 집이 무너졌다.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수도 카트만두 인근의 신두파촉에 살던 그의 가족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의 가족은 지금 집이 아닌 임시 거처에 살고 있다.

지진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네팔 정부는 이번 유니버시아드에 선수단을 보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딱한 사정을 들은 대회조직위원회와 광주시가 체재비와 교통비 등을 지원해줘 가까스로 33명의 선수단을 보내게 됐다. 그 덕분에 라마도 지진 후 네팔 선수가 처음 참가한 국제대회인 이번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어렵게 한국행 비행기에는 탔지만 라마는 펜싱 경기에 필요한 펜싱복, 마스크 등의 장비는 챙기지 못했다. 지진으로 모두 망가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대한펜싱협회가 손을 내밀었다. 110만 원 상당의 장비를 라마에게 준 것. 라마는 6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 예선에 출전했다. 단 1승만 거두고 5패로 7명 중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한국의 따뜻한 지원이 있었기에 대회를 잘 마쳤다. 평생 잊지 못할 대회”라며 “유니버시아드 출전 대신 복구에 힘을 보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펜싱으로 네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네팔 선수단은 선수촌 입촌 때 조직위에 아래층 방을 부탁했다. 그는 “지진을 겪은 탓인지 심리적으로 위축이 돼 빨리 밖으로 대피할 수 있는 아래층이 좋다. 아직도 지진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잘 못 잔다”고 말했다.

아이티 태권도 대표팀의 마르캉송 알티도르(27)도 라마처럼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집이 무너졌다. 당장 훈련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그러나 꿈을 잃지 않고 태권도에 열중했다. 이번 대회 출전도 그를 눈여겨본 주위 사람들이 비행기 티켓을 끊어줘서 이뤄졌다. 알티도르는 이번 대회 유일한 아이티 선수다.

중남미에 있는 바베이도스 육상 단거리 선수인 팔론 포르데(25)는 돈이 없어 굶는 날이 많았다. 올해 자국 내 대학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이 됐지만 이번 대회 출전을 앞둔 그에게는 신발이 없었다. 훈련 중 육상화가 찢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친구가 신던 육상화를 빌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빌린 신발도 한국에서 훈련 중 찢어져 수선집에서 꿰매야 했다. 다행히 그의 사연을 들은 한 한국 기업이 새 육상화를 구입해줘 걱정 없이 트랙을 달릴 수 있게 됐다.

광주=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