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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창덕]SK그룹의 추운 여름

입력 | 2015-07-07 03:00:00


김창덕 산업부 기자

SK그룹이 또 악재를 만났다.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지난해 말 ‘구원투수’로 투입한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61)이 방위산업체 납품 비리에 연관된 혐의로 5일 불구속 기소된 것이다.

SK로선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유가 폭락에 따른 재고 손실을 이기지 못하고 37년 만에 첫 적자를 냈다.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SK그룹은 지난해 12월 장동현 SK텔레콤 사장(52)과 박정호 SK C&C 사장(52) 등 50대 초반 전문경영인을 핵심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로 앉히며 ‘젊은 피’를 전면에 내세웠다. 거센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도 60대의 정 사장에게 SK이노베이션을 맡긴 것은 최대 위기에 빠진 회사를 정상화하려면 ‘검증된 베테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강도 높은 회사 기강 다잡기에 나섰다. 야근을 부활시켰고 약 350명을 희망퇴직시켜 조직을 슬림화했다. 비(非)핵심 자산 정리에도 나서 페루 천연가스 수송법인 ‘TgP’의 지분 11.19%를 약 2800억 원에 외국 기업에 매각했다.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는 과도한 몸집 줄이기에 대한 우려도 나왔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시각도 많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실적은 개선됐다. 올해 1분기(1∼3월) 3000억 원대 흑자를 낸 데 이어 2분기(4∼6월)에도 실적 호전에 대한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정 사장도 어느 정도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고 판단했는지 5월 28일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아직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하긴 이르다. 최근의 흑자는 중동 원유생산국들과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 간 ‘기 싸움’ 속에서 빚어진 일시적 현상이다. 저유가 흐름이 지속되면서 올레핀 등 나프타(원유 분해 산물)를 원료로 하는 석유화학 제품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원유 값이 오르면 언제 다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비상(飛上)’인 셈이다. 정 사장도 이 때문에 기자간담회에서 “알래스카의 여름”이라는 표현을 썼다. 녹음(綠陰)이 울창한 건 잠시일 뿐 다시 경영 환경이 얼어붙는다는 의미다.

재판이 시작되면 정 사장이 경영활동에 전념하기 어려워진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에 대해 “검찰이 기소한 것이 유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정 사장은 정상적으로 대표이사 직을 계속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정 사장이 직접 챙기던 국내외 영업활동과 재무구조 개선 작업 등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지난달 말 정 사장이 겸임하고 있던 SK에너지(SK이노베이션의 계열사) 대표이사 직을 김준 SK에너지 에너지전략본부장(54)에게 넘겨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은 2013년 1월 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뒤 경영활동에 상당한 차질을 빚어 왔다. 굵직굵직한 사업 기회를 손도 대보지 못하고 포기한 적도 많았다. 정 사장도 최 회장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룹 총수에 이어 그룹의 맏형 격인 주력 계열사 대표마저 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SK. 국내 3위 그룹이 유난히 ‘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김창덕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