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긴축 반대' 후폭풍] 유로존 재무장관-정상 긴급회의… 신임 그리스 재무 빈손으로 나타나 “국민 뜻” 내세워 시간끌기 전략… 치프라스 총리 8일 새 제안 예고 오바마, 올랑드와 긴급 전화통화 “그리스, 유로존에 머물게 해야”
이에 대해 CNN 등 주요 외신들은 “그리스의 연기(delay) 전략으로 풀이된다”며 “그리스 사태를 지켜보는 유럽권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30%의 채무탕감(헤어컷)과 만기 20년 연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고스 스타타키스 그리스 경제장관은 이와 관련해 전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유로존 정상회의에 전달할 새 제안에는 채무 탕감 방안이 담길 것”이라며 “직접 또는 간접으로 30%의 채무 탕감을 요청하는 방안은 우리 제안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 치프라스 총리의 새 협상안이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거부된 채권단의 제안과 거의 같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리스 정부는 채무 탕감을 관철하기 위해 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스는 당장 10일 20억 유로의 단기 국채 상환 만기를 맞고, 20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 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그러나 독일이 그리스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한 노선을 견지하면서 사태 악화를 막으려는 다른 유럽 채권국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7일 “독일이 유럽 국가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날 유로존 정상회의와 앞서 열린 유로그룹 회의에서도 독일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북유럽 국가들이 그리스의 새 협상안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회의가 난항을 겪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회의 전 “그리스 국민의 삶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그리스에서 지급 불능 사태가 임박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반면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는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사태의 결정적인 해법이 나올 가능성을 보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유럽의회 연설에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막아야 한다”며 “EU 내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내 경험에 비추어 그것은 잘못된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쟁점은 그리스의 채무 탕감 문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그리스 정부의 총부채 규모는 3173억 유로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77%에 이른다. 이에 따라 그리스가 요구하는 채무 탕감 규모인 총채무의 30%는 951억 유로가량 된다. 이는 IMF가 최근 보고서에서 예로 제시한 부채 탕감 규모 530억 유로(약 66조 원)의 2배에 가깝다.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는 “그리스에 채무 탕감을 해 준다면 단일 통화동맹인 유로존은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불가론을 폈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이날 유럽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은 금기가 아니다”며 채무 재조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초 7일부터 정상화될 예정이던 그리스의 은행 영업은 자금 부족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ECB가 6일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그리스가 요청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 증액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부의 자본 통제 조치는 10일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보도(로이터통신)가 나온다.
시민들은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반대’를 표시한 국민투표가 끝난 후 이틀이 지난 7일에도 은행 영업이 정상화되지 않자 술렁대는 분위기였다. 연금 생활자인 람브로스 씨(65)는 “은행 현금도, 슈퍼마켓의 물품도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아테네=전승훈 raphy@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