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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선]‘강제 노동’ 명기는 종착점 아닌 출발점

입력 | 2015-07-08 03:00:00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5일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규슈, 야마구치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산업시설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등재 결정문에는 주석의 형태로 “세계유산위원회는 각 시설에서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이해하기 위한 조치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발언에 주목한다”고 명기되었다. 그리고 일본 대표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되어(brought against their will)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하였다(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언했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견해를 받아들인 조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기시다 후미오 외상 등이 ‘forced to work’가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자국 대표 발언의 의미를 물타기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국내 여론을 의식한 또 하나의 사실 왜곡이다.

일본 정부는 ‘forced to work’가 ‘강제 노동’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표현은 국제노동기구(ILO)나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이 ‘강제 노동’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등재 결정문도 일본어 번역이 아닌 영문이 효력을 갖는다. 일본도 1932년에 비준한 ILO의 강제 노동에 관한 조약을 보면 강제 노동을 ‘처벌의 위협 아래 강요당하거나 자신의 의사에 의하지 않는 모든 노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대표의 발언이 ‘강제 노동’이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국제기구에서 처음으로 강제 노동을 인정했다는 외교적 성과를 일본 정부의 국내용 발언에 휘둘려 우리 스스로 폄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정부의 문제제기로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평가에 있어 희생자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고 역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며 과거의 역사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향후 유네스코가 부(負)의 역사와 관련된 시설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마리아 뵈머 의장이 한일 간 합의가 전체 위원국들을 크게 감동시켰다고 높이 평가했듯이 양국은 대화를 통해 극한 대립을 피할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은 양국이 현재 직면한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선순환적인 관계 발전을 도모해 가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시설에 한국인 등이 강제 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명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얼마나 동원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일이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등재 결정은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일본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해 나갈 수 있도록 유네스코와 함께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점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