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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한기흥]‘김정은 공포통치’ 탈출

입력 | 2015-07-09 03:00:00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2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최근 북한의 한 고위 간부가 망명해 (김정은의) 측근들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처형이 계속돼 생명의 위협을 느껴 탈출했다고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또 “김정은은 집권 후 3년 반 동안 약 90명의 간부를 처형했다”며 “공포의 통치는 단기간 통할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정권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킨다”고 했다. 최근 국내 언론에 북 고위 간부들의 잇따른 탈북이 보도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그때 이미 정보기관을 통해 정확하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민군 장성, 김정은의 자금을 담당하는 노동당 39호실의 중견 간부, 국가안전보위부와 정찰총국의 핵심 간부…. 최근 한국 망명설이 제기된 북의 당·정·군 간부들은 모두 김정은 공포통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탈북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김정은이 “튀다 튀다 이젠 보위부까지 튄다”고 했다지만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기막힌 일이다.

▷장성택, 현영철 같은 실세들이 무참히 처형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에 고위 간부들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포를 극대화해 권좌를 공고히 하는 것은 1936∼38년 피의 대숙청을 단행한 스탈린 이후 낯선 광경이 아니다. 북의 김일성, 김정일도 무자비하게 반대 세력을 말살했다. 김정은은 숙청의 예측 불가능성과 잔혹성에선 아버지 때보다 더 심하다.

▷김정은에게 책임을 추궁당할 만한 직책을 꺼리고, 만일에 대비해 탈북용 달러를 몰래 모은다는 북 간부들의 풍문도 전해온다. 공포통치 탈출이 북 체제의 균열을 보여준다고 단언하긴 이르다. 북한 주민은 “평소 못된 짓 하던 간부들을 김정은이 속 시원히 손본다”며 박수 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농지 소출의 상당 부분을 경작한 농민이 소유하도록 함으로써 주민의 식량난이 크게 완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권력을 갖고 있던 고위 간부들만 좌불안석이란 말인가.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