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진상 규명때까지 천막 운영” 일각 “이젠 시민에 광장 돌려줘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촌을 추모공간으로 재정비하는 공사를 하며 각목을 정리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광장 양쪽의 농성용 천막 사이에는 전에 없던 파란색 지붕의 대형 천막 8개 동이 새로 들어섰다. 합판과 각목, 벽돌 등 각종 공사 자재를 쌓아둔 곳이다. 현재 농성장에서는 이처럼 기존 천막을 ‘세월호 추모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자원봉사로 참여 중인 건축가 주대관 씨는 “천막 바깥쪽에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합판으로 두꺼운 벽을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 측은 11일 천막농성 1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10일까지 농성용 천막을 세월호 관련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진실 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광화문광장 내 천막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뜻을 서울시에 전했다.
▼“불법천막 철거를”… 서울시에 잇단 민원
“유가족 상처 보듬어야”… 철거 신중론도 ▼
이에 따라 용도는 바뀌었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천막이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도 “유가족들이 스스로 광화문광장을 떠나기 전까지는 천막을 철거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광화문광장 내 세월호 천막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제는 광화문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의견과 ‘유가족들의 상처를 고려해 원하는 시기까지 천막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천막농성이 시작된 이후 1년간 서울시에 접수된 민원을 보면 ‘세월호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는 민원이 60건, ‘천막을 그대로 둬야 한다’는 민원이 28건이었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무 부서를 중심으로 세월호 천막과 관련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하지만 현재로선 유족들에게 민원을 전달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천막은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다.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의해 광화문광장에서의 집회와 시위는 금지된다. 광화문광장을 사용하기 위해선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세월호 천막은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의 다양성을 되찾기 위해 세월호 유가족이 양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농성장 앞에는 유동인구가 많아 소수 의견을 알리기 위한 1인 시위자들의 ‘메카’로 불렸다. 하지만 천막농성이 시작된 뒤 1인 시위도 뜸해진 편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1년간 서울시가 내준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 건수는 총 167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189건) 대비 12% 줄었다.
서울시 측은 “세월호 천막이 들어선 이후에는 장소를 옮겨 세종대왕 동상 앞, 지하철 광화문역 출구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광장은 다수를 위한 공간인 만큼 서울시는 광장의 사용 목적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며 “시민들의 공식적인 의견을 모은 뒤 운영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고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유족들의 요구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만큼 천막 철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피해자 중 희생자 86명과 생존자 16명 등 102명이 인적 배상을 신청했다고 8일 밝혔다. 이는 전체 세월호 피해자의 28% 수준이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