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자신이 초청한 어린이들과 잠실구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 두산 제공
그해 이승엽의 성적은 타율 0.201에 15홈런, 51타점.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었지만 오카다 감독은 “승짱(이승엽의 애칭)은 성적을 떠나 팀에 모범이 되는 선수다. 후배들이 보고 배울 게 많아 더 데리고 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이승엽이 그해로 8시즌을 채우면서 이듬해부터는 외국인 선수가 아닌 자국 선수 대우를 받게 됐기 때문이었다.
요즘 한국 프로야구에도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 두산의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대표적이다.
현재 어깨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져 있는 니퍼트는 넥센과의 안방경기가 열린 3일 유니폼이 아닌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잠실구장을 찾았다. 그는 이날 한 사회복지관 아동 50명을 초청했다. 좌석은 물론이고 친필 사인 유니폼, 모자, 사인볼, 간식까지 모두 자기 돈으로 마련했다. “한국에서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며 2013년부터 2년 넘게 매달 하고 있는 행사다.
벌써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한 NC의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는 한 보육원 아이들을 25일 열리는 두산전에 초청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16일 SK전을 마친 뒤엔 자선 바자회를 연다. 모든 행사는 혼자 계획하고 준비한 것으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부탁했다. 그는 “3시즌째 NC에서 뛰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제 내가 보답할 차례인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어떤 면에선 한국 선수들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선수들이다. 기부나 선행이 일반화돼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가볍지 않다.
그래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에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일정 기간 한국 프로야구에 기여한 외국인 선수에게 국내 선수들과 똑같은 권리를 주는 것이다. 다년 계약도 가능하게 하고, 외국인 선수 쿼터에 적용되지 않게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면 각 구단은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선수를 오랫동안 데리고 있을 수 있다.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 제한을 받지 않아 전력이 강화되는 효과도 있다. 부상을 당해도 팀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수 있다. 구단들은 더욱 철저하게 외국인 선수들을 관리하게 되고, 선수들은 더 큰 충성심을 갖고 경기에 나설 수 있다.
1998년 한국 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장수 외국인 선수는 한화에서 7시즌을 뛰었던 제이 데이비스(1999∼2002년, 2004∼2006년)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뛰며 사랑받았던 그가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