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살리기 대책 절반 재탕]
8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박근혜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투자 및 수출 활성화를 위한 총 307개 정책 과제를 내놓았지만 절반이 재탕 정책인 것으로 나타났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하지만 정부가 9일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내놓은 투자 및 수출 활성화 대책들이 과연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구할 최상의 선택이냐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정책 가짓수를 채우는 데 급급하다 보니 기존 정책들이 재탕, 삼탕 됐고 정작 민간과 관련 업계가 강력히 요구한 정책들은 빠져 있는 탓이다. 국회를 탓하기 전에 정책의 옥석을 가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르스 사태로 관광 업계의 피해가 현실화하기 시작하던 지난달 15일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메르스 관련 관광 업계 지원 및 대응 방안’을 내놨다. 중화권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 스타를 활용해 관광 CF를 제작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광고 영상을 활용해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전략)을 추진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정책들은 이날 발표된 관광산업 육성 대책에 다시 포함됐다. 지난달에는 한류 스타로 배우 김수현 씨를 예로 들었다면 이번에는 배우 이민호 씨가 거론됐다는 점이 차이였다.
이런 식으로 정책 수는 늘었지만 업계의 핵심 요구 사항은 빠졌다. 여행업계는 이달 말로 닥쳐온 2분기 부가가치세 납부를 유예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지만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관광객 감소로 타격이 큰 인바운드 영세 여행업체들의 경우 6, 7월 매출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부가세를 이날까지 납부하지 못하면 가산세 등을 내야 한다.
정부가 관광기금 융자 재원 3000억 원을 증액한 것을 두고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3000억 원 중 업체들이 운영자금 용도로 신청할 수 있는 금액은 600억 원뿐이다. 관광 업체 관계자는 “운영자금이 없어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데 호텔을 짓고 시설을 확충하는 데 돈 쓸 업체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이번 대책 중 그나마 눈에 띄는 91조 원 규모의 민간 설비투자 계획의 경우 기업이 이미 투자했거나 투자할 계획인 프로젝트를 집계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세대 수출 유망 품목을 키우기 위해 2018년까지 대규모 민관 합동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는 내용도 민간이 대부분 주도한다. 6조8000억 원 가운데 정부 부담은 8000억 원뿐이다.
이렇게 재탕 정책들을 내놓는 것은 결국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경제학)는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고 하위 부처들의 고만고만한 사업들을 모아 놓은 듯한 모습”이라며 “파급 효과가 큰 정책들을 골라내는 것이 정부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 당국자는 “경기 부양의 모멘텀을 만드는 차원에서 정책을 종합적으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발표만 있고 그에 대한 피드백은 전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7차례나 투자 활성화 대책이 발표됐지만 기존 정책들이 어느 정도 진행됐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비슷한 정책들이 나와도 과거 발표된 것과 차이를 알기 어렵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기존 대책들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가 있어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지금보다 더 좋은 투자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최고야·황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