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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IMF “그리스 채무조정 필요”… 최대 채권국 獨 압박

입력 | 2015-07-10 03:00:00

그리스 새 협상안 EU에 제출
유로존 내부서도 “부채 줄여줘야”… 메르켈 “전통적 헤어컷은 불가”
그리스 4대은행 통폐합 기로에… 국민들 “현금 대신 명품 구매”




그리스가 자국의 운명을 가를 구제금융 협상안을 9일 밤 12시(한국 시간 10일 오전 6시)까지 제출한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12일 그리스가 내놓은 자구 노력 개혁 방안을 평가한 후 그리스에 대한 지원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협상안에는 3년간의 구제금융을 지원해 달라는 조건으로 연금 및 세제 개혁 등 재정 건전화 방안과 채무 조정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9일 그리스 언론에 따르면 협상안에는 그리스가 앞으로 2년 동안 재정수지를 120억 유로(약 15조1000억 원) 개선하는 조치가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리스가 지난달 22일 채권단에 제출한 개혁안의 조치들로 개선되는 재정수지 폭인 80억 유로보다 40억 유로 많은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협상안 타결 기대감으로 9일 유럽 증시는 2% 넘는 상승세를 보이며 출발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그리스의 부채 탕감(헤어컷)과 만기 연장 여부다. 채권단의 일원인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 물론이고 유로존 채권단 내부에서조차 그리스 부채를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9일 “그리스가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면 채권단 역시 그리스 채무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부채 경감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전날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도 채무 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발칸 국가를 순방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일 “전통적 헤어컷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며 채무탕감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스 정부는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은행 영업을 중단하고 현금지급기(ATM)의 인출 한도를 60유로로 제한한 자본 통제 조치를 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8일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금액 한도를 다시 동결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이뤄지면 대형 은행들은 폐쇄와 인수합병(M&A)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8일 EU 관계자의 말을 빌려 “그리스 4대 대형 은행인 내셔널뱅크오브그리스, 유로뱅크, 피레우스뱅크, 알파뱅크가 최종적으로 2개로 통폐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대형 은행들이 정치적, 경제적인 대혼란으로 타격을 받아 더 버티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 불안이 고조되면서 그리스 국민 사이에서는 명품이 현금보다 더 가치 있는 자산으로 평가받는 등 소비심리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8일 보도했다.

변호사 소피아 마르코울라키스 씨(48)는 요즘 생애 첫 ‘샤넬 백’ 구매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샤넬 백은 그동안 사치품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 그는 “환금성이 높은 명품 가방을 자산 보호 차원에서 조만간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수입에 의존하는 의약품 공급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산 대체 의약품이 없는 인슐린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당뇨 환자 로지프 페디카리스 씨(72)는 “하루 종일 여러 약국을 전전했지만 인슐린을 구할 수가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내 병을 관리하라는 말이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WP는 “2013년 자본 통제를 겪었던 키프로스 사태가 우리에게도 곧 닥칠 것이라는 그리스인들의 위기감이 이 같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상적인 구제 협상안에 합의해도 은행권의 파산과 자산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불안감이 그리스인들을 엄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김정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