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中증시 쇼크 내우외환 속 투자-수출대책 건수 늘리기 급급 청사개발-창업플랫폼 등 중복 발표… 수도권 규제완화 등 핵심은 빠져
중국 증시 폭락, 그리스 채무 불이행, 경제성장률 하락 등 한국 경제가 대내외 악재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경제 대책 307건 중 절반인 152건은 이미 발표한 적이 있는 ‘재탕 정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생 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 국회를 비판해온 정부가 위기 국면 돌파에 필요한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 수도권 규제 완화 등 핵심이 빠진 두루뭉술한 정책들로 건수 늘리기에만 급급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9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투자 및 수출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기업이 맘껏 투자할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시대에 맞지 않는 법과 제도는 스피드 있게 바꾸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책은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떨어지고, 중국 증시의 거품 붕괴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나와 위기 탈출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투자 대책 223건 중 133건(59.6%)과 수출 대책 84건 중 19건(22.6%)은 이미 무역투자진흥회의, 경제 정책 방향 공표, 부처 자체 브리핑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공식 발표된 적이 있는 정책들이었다.
정부는 또 민관이 116조 원 이상을 투입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했다. 이 116조 원 중에는 아직 협의 중이어서 변수가 많은 기업들의 민간투자 예정자금 91조 원이 포함돼 있어 실현 여부가 불확실하다. 이런 ‘정책 물량 공세’에 대해 한 대기업 임원은 “지원책 수는 많지만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다”며 “전반적으로 침체된 경제를 반전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꼬집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정면 돌파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수도권 규제를 포함한 지역 규제를 푸는 등 발상을 전환해 획기적 정책을 내놔야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손영일 / 박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