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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의 법과 사람]박근혜의 ‘자기 정치’와 MB의 레임덕

입력 | 2015-07-11 03:00:00


최영훈 논설위원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레임덕은 2010년 6월 29일 시작됐다. 그날 국회에선 세종시 수정안 관련 법안 중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찬반토론 후 진행된 표결에서 세종시 수정안은 재석 275명,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박근혜 의원이 반대토론에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대세가 갈렸다.




세종시 패배와 역사의 큰죄

여파는 컸다.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했던 정정길 대통령비서실장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형준 정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등 ‘순장 3인방’이 7월 중순 청와대를 떠났고, 얼마 후 정운찬 국무총리도 물러났다. 박재완 수석은 이임식 중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하지 못해 역사에 씻지 못할 큰 죄를 지었다”며 울먹였다.

MB 정권은 정말 역사에 큰 죄를 지었다. 여소야대도 아니고 국회선진화법 같은 나라 망칠 법도 없던 때였다. 대기업이 들어간 과학 중심의 경제도시 구상은 지금의 세종시보다 훨씬 나은 대안이었다. 충청도민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겸손하고 치밀하게 접근했더라면 행정부처 이전의 비효율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의 벽’을 넘지 못한 MB 정권은 그 기회를 날렸다.

그날 이후 권력의 추도 ‘미래 권력’으로 기울었다. 정치적 셈법으로는 무모한 도전을 했던 MB는 결국 세종시 수정안을 접었다. 당청 간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박근혜 의원은 자기 정치로 ‘여의도 대통령’이 됐다. 민감한 사안마다 정부는 미래 권력의 눈치를 봐야 했다.

5년 뒤 비슷한 권력투쟁이 다시 벌어졌다. 이번에는 ‘현재 권력’이 승자였다. 국회법 개정안 파동에서 촉발한 ‘유승민 사퇴’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친박을 움직여 완승했다. 임기 반환점을 맞기도 전에 레임덕에 빠진 MB는 박 대통령에겐 반면교사였다.

타고난 승부사인 박 대통령은 힘을 쓸 수 있을 때 힘을 썼다. 유승민의 자기 정치를 겨냥해 작심한 듯 ‘6·25 맹폭’을 가해 레임덕을 늦추는 데 성공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내년 공천 헤게모니 싸움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내년 총선은 미래 권력이 떠오르는 무대로, 박 대통령이 그때 힘을 쓰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총선이 임박한 시기에 당청 간 권력투쟁이 벌어지면 박 대통령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다음 달 25일부터 박 대통령은 반환점을 돌아 직을 수행할 날이 수행한 날보다 줄어든다. 경사면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쐐기를 박아 막았지만 레임덕은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은 빨라질 수 있다. ‘유승민 효과’는 당분간 여권 차기 주자들을 움츠리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주는 피로감 때문에 총선에 빨간불이 켜지면 레임덕은 바로 시작된다.




박 대통령도 前職이 된다


MB는 2010년 4월 23일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초청해 천안함 폭침사건 수습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박 대통령도 더 늦기 전에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하는 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MB는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다. 그래도 만나야 한다. 권력은 짧고 유한하다. 모든 현직은 때가 되면 전직이 된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기도 힘들지만 하산길은 더욱 험난하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