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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남평문씨본리세거지

입력 | 2015-07-13 03:00:00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문정영(1959∼ )




한옥의 창문을 공부하다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다’라는 말의 봉창을 남평문씨본리세거지에서 소개 받았다.

내다보는 것이 窓이라면 여는 것이 門이다.
분합문, 미닫이문, 미서기문에는 바라지창, 광창 등 크고 작은 창이 있다.
그 창으로 조상들은 능소화를 내다보았을 것이나 문을 열고 좀처럼 길가까지는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봉창은 내다보는 창이 아니라 빛과 공기가 드나드는 문이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의 봉창은 사랑채의 창문 위에 달려 있다.

종이로 발라 놓은 봉창은 햇볕으로 열 수 있으나 사람이 두드리면 열리지 않는다.
누가 봉창을 두드렸을까.
들어갈 수 없는 문을 두드려 난감해진 조상은 누구였을까.

돌과 묵은 이끼가 있는 연못에도 봉창이 있다.
문을 열고 연못까지 걸어간 조상은 거기서 한울 같은 잉어를 만나 물 위에 봉창을 만들었으리라.
구름 문 하나를 연못에 풀어놓았으리라.

동본(同本)이나 나는 대구 달성에 가본 적은 없다.





아버지와 언니가 저녁밥을 먹으면서 나누던 얘기가 생각난다. “아버지, 우리 조상 중에는 벼슬한 사람이 없어요?” 중학교 일 학년생 맏딸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물음에 아버지는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우물쭈물 대답하셨다. “왜, 있지. 황희 정승이라고.” 아, 그 유명한! 내 얼굴도 언니처럼 환해졌다. 알고 보니 황희 정승 본관은 장수, 우리는 평해. 내가 어렸을 때도 이미 ‘돈이 양반’인 시절이었지만 영락했더라도 ‘양반’의 자손들은 조상의 영광에 자부심을 가졌다.

고려 말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들여와 목화를 퍼뜨린 문익점 선생이 남평 문씨다. 그 집안사람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에 남아 있는 고택이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능소화가 아름다워 이맘때면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한옥을 공부하다 비로소 그 고택을 알게 됐다니, 그러고도 거길 ‘가본 적은 없다’니, 가문에 정이 없는 시인이다. 그래도 사진으로 유심히 보았나 보다. 양반이 살던 고택답게 문과 창이 많은데 그중 ‘봉창’에 시인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내다보는 창이’ 아닌 창, ‘햇볕으로 열 수 있으나’ 사람에게는 열리지 않는 창! 거기 주인이었던 이들의 기척이 희미한 그림자로 어룽거리는 고택. 시간이 고여 있는 풍경의 나른함을, 집 안의 사람이 자다가 두드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 밖에서 두드리는 사태에 봉착한 봉창으로 집안의 ‘난감한’ 비사를 설핏 누설하는 4연이 휘젓는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