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3차 구제금융 타결] 초강력 긴축안 수용한 정부 비판 보조금 혜택 사라진 서민 민심 악화… “獨재무, 인간 아니다” 분노 표출 ECB, 긴급유동성지원 증액 등… 금융지원으로 경제 숨통 트일 듯
“우리는 어그리크먼트(aGreekment)에 이르렀다. 이제 잠자리에 들 수 있다.”
13일 오전(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 국가) 정상회의장에서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트위터에 올린 이 소식에 세계 증시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를 피하게 됐다”며 반겼다. 반면 혹독한 개혁 리스트를 받아든 그리스 민심은 심각한 충격에 빠졌다고 외신들은 일제히 전했다. 그리스 국민은 5일 국민투표에서 62%의 압도적인 지지로 긴축안에 반대하며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에게 힘을 실어 줬으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치프라스 정부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계 회사 직원인 페터 파파스 씨는 “이번 국민투표처럼 이상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러려면 돈과 시간을 들여 국민투표는 왜 한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가가치세 우대와 보조금 혜택을 받은 도서 지역의 민심은 더욱 술렁였다. 새로운 긴축안을 적용하면 도서 지역의 부가가치세 우대와 보조금이 철폐돼 서민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파로스 섬의 마로코스 코베오스 시장은 “주민의 생활비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관광업에도 타격을 준다. 인근 터키 몰타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스페인과 비교할 때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에선 갑작스럽게 ‘#이것은 쿠데타다(#ThisIsACoup)’라는 해시태그를 붙인 메시지의 전송량이 급증했다. 이번 구제금융 협상을 비난하는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와 독일에서 1위를 기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해시태그는 특정 단어 앞에 ‘#’ 기호를 붙여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나타내는 누리꾼들의 표현 방법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뉴욕타임스 블로그에 “(채권단의 요구는) 가혹을 넘어 보복과 주권 말살을 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에 대한 분노도 표출됐다. 테살로니키에 거주하는 파나지오티스 알렉시아디스 씨는 그리스에 대한 강경 노선으로 일관한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을 겨냥해 “그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게으르다고 하는데 9세부터 67세인 지금까지 줄곧 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럽의회 부의장으로 그리스 집권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소속 의원인 디미트리오스 파파디물리스 씨는 방송에 출연해 “독일은 그리스와 그리스 국민을 굴욕당하게 하거나 치프라스 정부를 전복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리자 소속 디미트리 세바차키스 의원도 “독일 등이 제안한 것은 징벌적이다. 일종의 복수”라고 규탄했다. 12일 오후 9시에는 그리스 의회 앞 신타그마(그리스어로 헌법) 광장에 100여 명이 모여 독일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좌파 정당인 ‘안타르시아’는 13일 저녁 아테네 의사당 앞에서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자고 제안했다.
공무원인 40대 스텔라 길바니 씨(여)는 “이렇게 될 걸로 믿고 있었다. 비록 우리에겐 힘든 길이 되겠지만 다른 길이 없는 것 아니냐”며 “유로존이 아무리 그리스를 탈퇴시키려 해도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이런 결정밖에는 못 내렸을 것”이라고 했다.
어떻든 이번 협상 타결로 그리스 경제는 일단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협상 타결과 동시에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증액을 결정해 빈사 상태에 허덕이던 은행들이 살아날 가능성이 생겼다. 요르고스 스타타키스 그리스 경제장관은 11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ELA 증액이 결정되면 은행이 일주일 내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종 pen@donga.com·이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