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3차 구제금융 타결] 유로존 정상 마라톤 협상
○ 사실상 경제주권 포기한 그리스
여기에 그리스 의회가 4개 개혁법안을 15일까지, 2개 법안은 22일까지 입법을 끝내지 않으면 협상은 다시는 없다는 것도 못 박았다.
채권단은 또 올 1월 말 집권한 시리자 정부가 지금까지 도입한 법안 가운데 인도주의적 법안을 제외한 반긴축법안을 재검토해 수정하라는 주문도 했다. 시장 규제 완화로 일요일 영업과 세일 기간, 약국 면허, 우유, 제과점 등의 부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안을 이행하라고도 요구했다. 이와 아울러 송전공사 민영화, EU 모범 규준에 맞도록 단체교섭권 현대화, 대량해고 등의 일정을 채권단과 합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로존 정상들은 또 그리스의 부채를 만기 연장 등으로 ‘경감(relief)’하는 것만 제안했고 치프라스 총리가 희망했던 ‘탕감(헤어컷)’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타결되지 않았던 최대 쟁점은 그리스가 국유자산을 매각해 조성하는 500억 유로 규모의 펀드 문제였다. 독일은 이 자산을 독일재건은행(KfW) 산하 룩셈부르크 펀드로 이관해 부채를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그리스 내부에서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크레타 섬 같은 관광지를 팔라는 굴욕적인 요구”라는 반발이 나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요구가 지나치다”며 거들었다. 치프라스 총리는 결국 500억 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되 250억 유로는 은행의 자본 확충에, 125억 유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감소에, 나머지 125억 유로는 성장과 투자에 활용하도록 한 수정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최대 250억 유로는 성장을 위한 투자에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이 펀드를 외국에 이관하라고 주문했지만 프랑스의 적극적인 중재로 펀드를 그리스 내에 설립하고 EU 채권단의 감시 아래 그리스 정부가 운용하는 것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 남은 일정도 험난
우선 채권단이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15일까지 그리스 의회가 개혁 입법 처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그리스 내부는 이미 분열이 감지된다. 시리자 내 강경파인 ‘좌파연대’는 11일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를 위한 개혁안에 대한 표결에서 17명이 지지를 거부해 치프라스 총리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따라 치프라스 총리는 11일 표결에서 지지를 거부한 장관 2명을 교체하고 표결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리자 내 강경파 40여 명이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보수우파, 중도좌파 야당은 찬성할 것으로 예상돼 법안은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또 그리스의 개혁입법이 통과된 후 유로존 일부 회원국별로 의회 승인이 있어야 구제금융 협상이 개시될 수 있다. 19개국 중 의회 승인이 필요한 국가는 독일 에스토니아 핀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스페인 등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협상 타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구제금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