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트럭으로 성공한 로이 최 씨를 모델로 제작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4년)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김성규 셰프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은 따로 있다. 영화 제작에도 참여한 한국계 미국인 로이 최 씨(45)다.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한 ‘고기(Kogi)’라는 푸드 트럭으로 성공 신화를 쓰고, 이후 미국의 푸드 트럭 열풍을 촉발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 이전에도 미국에 푸드 트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로이 최의 성공에 주목하는 것은 ‘거리 음식은 싼 대신 질이 낮다’는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요리학교 CIA 출신으로 호텔과 유명 레스토랑 셰프 경력까지 갖춘 그는 멕시코 음식에 한국 음식을 접목한 불고기 타코를 2달러에 선보였다. 모바일 시대에 걸맞게 푸드 트럭 위치를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렸다. 시작한 지 몇 개월도 안 돼 그의 푸드 트럭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의 성공이 어느 정도일까. 2010년 3월 29일자 타임 기사에 따르면 로이 최는 푸드 트럭 사업 첫해 200만 달러(약 22억6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2달러짜리 주력 메뉴로 거둔 매출로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그해 그는 미국 음식 전문지 ‘푸드&와인’이 선정한 신인 셰프 톱10에 선정됐는데 푸드 트럭 운영자가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현재 그는 4대의 푸드 트럭과 2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자, 이제 국내에도 제2의 로이 최가 나올 수 있을까. 마침 한국도 지난해 3월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거론된 뒤 푸드 트럭 합법화의 길을 열어준 상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가이드라인 안에서는 푸드 트럭 성공 신화가 나오기 힘들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정부는 합법화 규정을 만들면서 푸드 트럭에 두 개의 족쇄를 달았다. 하나는 장소 규정이고 또 하나는 개조 트럭 규격 규정이다. 푸드 트럭 사업자 입장에선 차량의 이동성을 활용하면서 차별화된 새로운 메뉴를 선보여야 인기를 끌 텐데 지금으로선 정부가 정한 장소에서만, 그것도 장소 임대 계약을 맺어야만 영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푸드 트럭으로 개조 가능한 차량도 0.5t과 1t 화물차밖엔 안 된다. 푸드 트럭 합법화 눈높이가 떡볶이와 어묵, 순대, 튀김 정도를 파는 기존 노점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두 명이 서서 일하기도 비좁은 공간에서 새롭고 맛있는 음식이 탄생하긴 어렵다. 위생적인 부문에서도 취약하다.
반면 미국에서 푸드 트럭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스텝 밴’ 화물차는 길이 4.3m 이상의 공간이 확보돼 웬만한 조리시설에 개수대, 냉장과 냉동고 설치가 가능하고 4명 정도가 일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레스토랑 주방의 축소판이라 봐도 된다.
이런 규제의 문제점 때문에 한국의 푸드 트럭 성공 신화는 거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부산에 거점을 두고 차량을 이용한 이동식 급식 사업을 해 온 김진석 씨를 지난주 만났다. 그는 푸드 트럭으로 관심을 넓혀 올해 초 ‘푸드트럭코리아’라는 업체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페스티벌을 대상으로 푸드 트럭을 이용한 푸드 코트를 운영한다. 행사장 안에서 열리는 만큼 현재 합법화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푸드 트럭도 유치할 수 있다. 물론 아직 국내에 몇 대 없는 게 문제이긴 하다. 내가 운영하는 푸드카도 캠핑카를 개조한 ‘유사 푸드 트럭’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사유지에 세워놓고 운영하지만 행사장이라면 모를까 거리로 나설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정부가 푸드 트럭을 활성화하고 싶다면 최근 미국의 푸드 트럭 업계를 돌아보고 온 김 씨의 이 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푸드 트럭은 새로운 음식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필자(44)는 싱가포르 요리학교 샤텍 유학 뒤 그곳 리츠칼턴호텔에서 일했다. 그전 14년간 동아일보 기자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푸드카 ‘쏠트앤페퍼’를 운영 중이다.
김성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