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 이을호 전서’ 27권 펴낸 제자 오종일 이향준 장복동 교수
장복동 이향준 전남대 교수와 오종일 전주대 명예교수(왼쪽부터)가 스승인 현암 이을호 선생을 회고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칠순을 넘긴 노학자의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벌써 17년이 흘렀건만 그는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종일 전주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말년에도 하루 10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계셨다. 숨을 거두기 석 달 전까지 논문 ‘한국실학 자생론(韓國實學自生論)’을 펴내실 정도였다”고 말했다. 다산학(茶山學)의 거두 현암 이을호 선생(1910∼1998) 얘기다.
현암의 각종 논문과 저서를 모은 27권짜리 ‘현암 이을호 전서’(한국학술정보)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최근 출간됐다. 이 전집 출간에 힘을 보탠 현암의 직계 제자 세 명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이들은 스승에 대해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쾌척할 정도로 순수했던 동시에 학문의 세계에서는 추상같이 엄격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암이 전남대 인문대학장으로 재직할 때 교수들의 연구실에 놓여 있던 바둑판을 엎었던 얘기가 대표적이다. 한가하게 바둑이나 둘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책을 보라는 준엄한 질책이었다.
평생 학문 연구에서 한국적 시각을 중시한 현암의 노력은 고전 번역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논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다산의 주석을 참고하면서 우리 시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또 딱딱한 번역투가 아닌 깔끔한 한글 번역으로 눈길을 끌었다. 최근 인기를 모은 올재클래식스 시리즈의 ‘한글논어’는 50여 년 전 현암이 집필한 책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명작은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준다.
무엇보다 현암이 이룬 금자탑은 1967년 쓴 ‘다산경학사상연구’. 다산학 최초 논문으로 방대한 다산의 저작을 명쾌한 논리로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다산학 입문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통한다. 이향준 장복동 전남대 교수는 “이 논문 속에 다산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모두 담겨 있다”며 “선생은 시대를 앞서간 분이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