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교 50년 맞아 일본 내 문화재 환수는커녕 ‘도둑 감싸는 나라’로 모욕당해 정부가 국민정서 구실로 할일 안 하다가 패착 일본에 불교 전파한 문화적 자존심에 큰 상처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문화재 반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문화재 문제에 관한 한 공수(攻守)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어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을까.
3년 전인 2012년 10월 한국인 8명이 일본 대마도(쓰시마 섬)에서 불상 2점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불상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한 점은 통일신라, 다른 한 점은 고려 때 것이었다. 범인들은 체포되어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불상은 유네스코협약과 국내법에 따라 일본으로 돌려줘야 했으나 아직 대전 문화재청의 수장고 안에 있다. 일본은 이 불상들을 빨리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 측은 불상 반환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가뜩이나 ‘혐한(嫌韓)’ 소재가 아쉬운 일본 내에서는 “한국은 도둑을 감싸는 나라”라는 성토가 잇따랐다. 지난해 11월 다른 한국인 절도단이 대마도에서 불상을 훔쳤다가 체포된 것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이래저래 이 사건은 외교적으로 최악의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불상이 국내에 반입되었을 때 곧바로 돌려주었더라면 지금처럼 상황이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후 불상 가운데 한 점이 1330년 충남 부석사에 봉안됐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2013년 2월 부석사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을 때에도 기회가 있었다. 법적 다툼의 소지가 없는 나머지 한 점을 먼저 일본에 반환했다면 그나마 국제사회에 체면을 세울 수 있었는데도 정부는 단안을 내리지 못했다.
법조계는 가처분 소송으로 우리가 얻을 게 별로 없다고 분석한다. 부석사가 불법적으로 불상이 대마도로 유출됐음을 입증해야 하지만 600여 년 전 일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원이 결정한 3년간의 가처분 기간은 내년 2월 종료된다. 7개월 후 다른 사유가 없는 한 일본에 불상을 돌려줘야 한다. 문화재 불법 반출은 국제적 관심사다. 유네스코가 1970년 제정한 ‘문화재 불법 반출 반입에 관한 협약’에 세계 116개국이 가입해 있을 정도다. 한국도 협약에 가입되어 있다. 한국이 마지못해 불상을 돌려주는 모습이 외국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스럽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의 결정적 실책은 지나치게 국민 눈치를 본 것이다. 훔친 불상이더라도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을 왜 미운 일본에 다시 내주느냐는 정서가 일각에 있을 수 있다. 이에 영합해 정부는 아무 일 않고 손 놓고 있는 안이한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정부는 절도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침묵하는 다수는 외면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