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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의 기초’도 안 배웠는데 ‘분수 덧셈- 뺄셈’이 불쑥…

입력 | 2015-07-16 03:00:00

누더기 교육과정, 이번엔 제대로 바꿔보자<1>부실 개정 실태




《 교육과정 수시 개정 체제는 교육적 요구 사항과 변화하는 교과 내용을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학교에 교육과정이 제대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또다시 교육과정 개정이 이뤄지고 있어, 교육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장기적 비전은 찾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이 누락되거나 중복되는 등 다양한 부실 사례가 드러났고,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수업의 질 하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 빠지고 중복되고… 잇따른 오류

1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새로운 교과서로 공부하면서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일부 내용이 완전히 사라지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 교과서에는 분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없이 바로 분수의 덧셈과 뺄셈이 등장했다. 분수라는 개념이 없는데 바로 계산을 하라고 나온 것이다. 이는 2007 개정 교육과정 중 ‘분수의 기초’는 4학년 과정이었는데,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바뀌면서 이 단원이 3학년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과서에는 3학년 때도, 4학년 때도 분수의 기초는 등장하지 않았다. 또 과학 과목에서도 ‘지층과 화석’ ‘지표의 변화’ 등이 사라졌다. 교육부는 별지 형태의 수업 보충자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수습했다.

또 올해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는 이 학생들이 지난해 배웠던 5학년 국어와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똑같았다. 소설과 시, 인용문, 질문까지 동일한 내용이 2년 연속 등장했다.

개정 과정에서 학습 내용이 이동해 학습의 체계가 문제 되는 경우도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과학 교과에 있던 식물 관련 단원이 2009 개정 교육과정 적용 이후 1학년으로 이동했다. 식물의 필수 원소와 광합성 과정을 이해하려면 원소기호를 알아야 하는데 1학년들은 이를 배우지 않아 수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 과학 교사는 “교육과정 개정하면서 내용을 통합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조율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 수업의 질 하락 우려

잦은 개정으로 교육과정은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바뀌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은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해 내년이 돼야 초중고교 12개 학년이 동일한 교육과정의 적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1년 만에 끝이다. 이전 교육과정 적용이 갓 시작된 시점부터 새로운 교육과정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2017년부터는 현재 추진 중인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의 잦은 개정으로 인한 불만과 불안감이 크다. 교육과정이 자주 변해 교사들이 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 학교 교육은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과정인데,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 있어 수업의 질 하락이 우려된다. 한 교사는 “사회가 요구하는 큰 틀인 교육과정을 교사가 정확히 알고 있어야 그 범위 안에서 자율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수업을 할 수 있는데, 이를 모르면 수업 자료 중 하나일 뿐인 교과서에만 의존해 수업을 하거나 틀을 벗어나 가르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교육과정이 자주 변해 수험생들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교육과정에 맞춰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게 맞는지 불안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교육과정 개정이 추진되면서 교육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3개 교육단체는 14일 “빈번한 개정으로 교육과정은 누더기가 되어가고 학교 현장은 교육과정의 실험실이 돼 버렸다”며 “교육과정 개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잦은 교육과정 개편으로 현장 피로감이 존재한다”며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는 “교육과정 개정은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고 질 높은 연구를 통해 뒷받침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각계의 민원을 처리하듯 임기응변 식으로 이뤄져 왔다”며 “앞으로 졸속 개정을 막으려면 개정의 원칙과 절차를 먼저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