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포니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장르의 노래만 항상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소에 우리가 듣는 음악은 개인이 직접 고른 노래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노래이기에 감동을 느끼기보다 시간을 때우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한국 대중가요 케이팝(K-pop)이 그렇다. 한국 문화 가운데 나와 맞지 않는 느낌이 드는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케이팝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케이팝 팬들이 미국 팝 팬들처럼 12∼16세 소녀들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팬층이 다양해 정말 놀랐다. 주부, 군인 심지어 아저씨 팬(한국에서 ‘삼촌팬’이라고 불리는)들이 있는 게 신기했다. 물론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 살다 보니 대형 기획사의 힘으로 홍보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형 기획사가 미는 케이팝은 술집, 가게, 텔레비전 등 어느 곳에서든 흘러나왔고,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음악을 들어야 했다. 나는 케이팝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아마 한국 음악 중에 케이팝만 있었다면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다른 음악을 찾기로 했다. 록, 인디, 클래식 등 여러 콘서트를 다녔다. 한국에 이렇게 좋은 뮤지션이 많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이 음악들은 훌륭했다. 현재 수준보다 더 많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홍익대 인근의 유명한 음악 클럽에 가서 여자 보컬이 있는 밴드 공연을 봤는데 정말 좋았다. 토요일 밤이니까 관객이 100명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15명 정도밖에 없었다. 좀 아쉬웠지만 공연만큼은 좋았다. 이런 밴드 공연은 늘 흥분되고 재미있고 신난다. 좋은 밴드들이 열정적으로 연주해서 청중은 음악과 하나가 돼 같은 감정을 나눈다. 가끔 가수가 음정이 틀리거나 기타 연주자의 기타 줄이 끊어지는 것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 느낌이 중요하다. 반면 케이팝은 항상 완벽을 꾀한다. 완벽한 노래와 춤, 스타일, 몸매…. 그러나 이런 것은 ‘과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완벽해서 감동을 받을 수 없다.
록 공연이 언더그라운드에 머물지 않고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가 도약하는 무대로 생각하면 좋겠다. 음반 회사들이 록 밴드를 좀 더 많이 홍보하고, 사람들은 록 클럽에 가서 새로운 밴드를 더 많이 발견하면 좋겠다. 또 식당이나 술집, 가게 주인들이 케이팝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음악을 틀어서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록 음악이 아니어도 괜찮다. 한국에는 인디, 재즈, 클래식, 힙합 등 재능 있는 아티스트의 좋은 음악이 많이 있다.
케이팝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음악이 외국에서 일시적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받으려면 좀 더 진화해야 한다. 한국의 록과 인디 공연에 가 보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이 어울려 공연도 하고 관람도 한다. 한국의 록과 인디 공연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본다. 국제적으로 한국 음악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홍보하면 좋겠다.
※ 벤 포니 씨(28)는 200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으며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있다.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어낸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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