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정치부 차장
이 의원은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했다. 한국은 누군가 책임을 지고 나면 수습은 등한시한다.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의 실책을 문제 삼으려 하면 여론이 악화된다. ‘책임지고 물러났으면 됐지…. 다 끝난 일 아니냐’는 동정론이 우세해진다. 반면 미국은 수습이 되고 나면 책임자들의 잘잘못을 따져 엄정히 처리한다는 것이다.
의원 개인의 인상비평적 관찰이긴 하다. 그러나 정치에서 책임과 수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당 대표가 된 지 2개월여 만에 맞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문재인 대표에게 사퇴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당시 여론도 문 대표의 사퇴 쪽으로 흐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거 패배 이튿날 문 대표가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것은 책임지는 자세는 아니었다. 한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그때 ‘책임을 통감한다. 의원총회나 중앙위원회에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면 비노 진영이 차마 불신임을 했을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책임은 지나갔지만 수습은 남았다. 선거 패배 후의 새로운 당직 인선이 그것이다.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더 넓게 탕평하겠다”라는 문 대표의 공언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유쾌하지 않았다. 어느새 당직 인선은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에 삼켜져 버린 형국이다. 전당대회 때 문 대표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한 486 의원은 “수습할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수습을 혁신으로 덮어 버리지 않았느냐”라고 탄식했다.
혁신안이 20일 중앙위원회를 통과하면 문 대표에게는 다시 한번 수습할 기회가 온다. 사무총장직이 없어지고 5개 본부장 체제로 바뀌면서 닥칠 또 한번의 당직 인선이다. 답은 나와 있다. 서두에 밝힌 의원의 주장을 역으로 생각하면 한국 정치에서는 수습을 하고 나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