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던진 장나라는 환하게 웃고 있지만, 1초 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사상 가장 아찔한 순간이 연출됐다. 2002년 문학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의 시타자는 서군 1번 이종범이었다. 스포츠동아DB
KBO리그 올스타전은 치열한 승부의 무대보다는 축제에 가깝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팬들은 위한 축제지만,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은 시즌 내내 자주 마주치며 경기를 했던 각 팀 선수들이 모처럼 ‘동료’로 만나 웃으며 야구를 즐긴다. ‘호불호’가 갈리는 대목이지만 현실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서일까. 올스타전에선 평소 볼 수없었던 재미있는 장면들이 자주 나왔다.
● 아찔했던 장나라의 5m 시구
한국은 물론 일본과 미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2002년 가수 겸 연기자 장나라의 5m 시구는 역대 최고의 해프닝으로 꼽힌다. 당시 문학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의 시구는 절정의 인기를 끌던 장나라가 맡았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묘했다. 장나라는 다른 스케줄과 교통정체로 인해 20여분을 지각해 서둘러 시구를 했고, 공은 서군 1번타자 이종범의 등 뒤로 천천히 날아갔다. 사회를 맡았던 개그맨 이창명은 무엇이 아쉬웠는지 장나라에게 더 앞으로 나와 다시 시구하라고 요청했다. 장나라는 쑥스럽게 웃으며 배터리 박스에서 5m 정도 거리에 섰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다. 공을 던진 순간 이종범은 배트를 휘둘렀다. 장나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숙였고, 타구는 머리에서 30cm 옆으로 날아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종범이 장나라의 지각에 화가 났다’, ‘괜히 두 번 던지게 해서 화가 났다’는 등의 추측이 뒤따랐지만, 훗날 이종범은 “올스타전이라서 팬들을 위해 시구를 한 번 쳐보자고 생각했다. 나도 굉장히 놀랐다. 장나라 아버지께 전화해 사과했다”고 해명했다.
2000년 제주에서 열린 올스타 2차전. 매직리그 구대성은 4-3으로 앞선 9회말 2사 만루서 드림리그 홍성흔을 상대로 폭투 2개를 던져 4-5로 패했다. 허망한 끝내기였지만, 구대성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예약한 비행기를 놓치기 싫었나보다’, ‘1차전에서 홈런 3방을 날린 팀 동료 송지만의 MVP 수상을 위해 혹시 모를 홍성흔의 끝내기 안타를 피했다’는 등의 해석이 오갔다.
● 사상 초유의 시상식 거부
1988년 잠실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동군은 연장 11회 혈투 끝에 서군에 9-8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기자단 투표로 선정된 MVP는 발목 부상을 당했지만 연장까지 뛰며 투혼을 발휘한 서군 한대화였다. 장효조 또는 김용철의 수상을 기대했던 동군 선수들 일부는 ‘우리가 이겼는데 말도 안 된다’며 시상식 참가를 거부했다. 모처럼 올스타전에서 뜨거운 승부욕이 발휘됐던 순간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