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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기자의 야구&]60년 ‘金의 전쟁’… 숫자 싸움만 남았다

입력 | 2015-07-17 03:00:00


김성근 감독

김응용 감독

첫 만남이 1959년이니, 거의 60년 세월이다. 김성근 감독과 김응용 감독은 오래된 친구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2007년쯤인가, 김성근 감독은 “그 친구(김응용)는 늘 양지에서만 야구를 했고, 나는 그늘에만 있었다”고 말했다.

김응용 감독은 비단길만 걸어왔다. 국가대표 4번 타자 출신으로, 34세 때 당시 최고의 실업팀인 한일은행 감독에 올랐다. 프로 출범 뒤에는 선동열, 이종범, 이승엽 등 슈퍼스타들을 지휘하며 10번이나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반면 일본에서 혈혈단신 건너온 김성근 감독의 삶은 고단했다. 살아 남기 위해 기꺼이 혹사당했고, 어깨 부상으로 20대 중반에 유니폼을 벗었다. 지방 고교의 야구부 감독으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김성근 감독은 프로에서도 쌍방울, 태평양 등 하위권 팀을 주로 맡았다.

김성근 감독은 “김응용 감독이 부러웠고, 야구에서는 꼭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김성근 감독은 큰 승부에서 번번이 졌다. 2002년 한국시리즈는 특히 쓰라렸다. 독하게 붙었지만, 결과는 2승 4패의 패배였다. 김응용 감독은 그 자리에서 통산 10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김성근 감독은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그때 김성근 감독은 환갑이었다.

김응용 감독은 당시 “마치 ‘야구의 신’을 상대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을 한껏 치켜세웠지만, 결국 자신이 최종 승자라는 것을 확인시킨 것이었다. 그때부터 김성근 감독은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김응용 감독은 2004년 현역에서 물러났다. 김성근 감독이라는 꽃은 그때부터 피기 시작했다. 2007년 SK 감독에 오른 김성근 감독은 3번이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김응용 감독은 그런 상황이 영 마뜩잖았다. 2012년쯤 김응용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 현역 때 날 이겨본 적 있어? 라이벌은 무슨 라이벌?”이라고까지 말했다. 2013년 한화 사령탑에 전격 취임한 김응용 감독은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시대는 아니었다. 2년 연속 꼴찌. 천하의 명장이 허망하게 쓰러졌다. 노욕의 대가는 가혹했다.

둘의 인연은 질겼다. 김성근 감독은 올해 김응용 감독의 자리를 넘겨받았다. 김성근 감독은 예전보다 더 예리하게 갈고닦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18일 올스타전 때 김응용 감독의 은퇴식이 열린다. 김성근 감독은 그간 입에 담지 않았던 말을 꺼냈다. “김응용 감독은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응용 감독이 2002년 자신을 ‘야구의 신’이라고 했던, 그 맥락이 그대로 읽힌다. 라이벌전 2막의 승리 선언이다.

두 거장은 안다. 결국 마지막 승부는 숫자 싸움이라는 걸. 김응용 감독은 떠나지만 그의 통산 최다승(1567승), 최다경기(2935경기) 기록은 철옹성처럼 남아 있다. 김성근 감독은 여기에 300승, 500경기 정도 뒤진다. 앞으로 4년 정도 더 걸린다. 70대 중반 김성근 감독은 한화에서 롱런 기반을 갖췄다. 자신을 중심으로 팀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60년 라이벌 열전이 최종 3막을 향해 가고 있다.

윤승옥 채널A기자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