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페이스북에는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습니다. 측면이 길게 긁힌 검은색 차량에 흰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안에는 위와 같은 메모가 담겨 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맞춤법도 엉망인 이 메모는 마치 글쓰기에 서툰 할아버지, 할머니가 쓴 듯한 인상을 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에는 모두가 예상하는 뭉클한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굽은 허리를 이끈 채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동네 노인을 본 적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잠시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둘 법한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글에 담긴 사연은 이랬습니다. 사진 속 검은 차량의 주인임을 자칭한 게시자는 자신의 차를 긁은 누군가가 남긴 메모라며 해당 사진을 소개했습니다. 차가 긁히는 피해를 봤건만 그는 도리어 불안에 떨고 있을 그 누군가를 걱정했습니다. “봐드리는 건 봐드리는 건데 (상대방이) 걱정하고 있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초조하고 복잡하다”며 천사 같은 마음씨를 선보였습니다.
팍팍한 일상 속 모처럼 들려온 단비 같은 이야기에 누리꾼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해당 글은 20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고 게시자의 글을 팔로하는 이들도 3000여 명이나 늘었습니다. 일명 리어카 미담이라는 이름을 달고 급속도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한 모바일 메신저 단체창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뒤바뀌었습니다. 리어카 미담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 프로필 사진을 쓴 한 사용자는 메신저 단체방에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자신이 연관된 모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해당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할머니 섭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화 상대방의 메시지는 애초 이 사연이 실체가 없는 조작된 이야기임을 가늠하게 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조작이다, 아니다, 누리꾼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당 사용자가 전에도 사실관계를 조작한 적이 있었다는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애초 ‘사실과 다르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도 결국 자신의 계정을 폐쇄하는 등 백기투항해야 했습니다. 사실관계를 규명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누리꾼 모두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봐야 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거짓 미담에 감동한 내 마음을 물어 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바이럴마케팅(입소문 전략)의 공허함은 이미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 한발 더 나아가 미담까지 조작해가며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을 볼 때마다 SNS 공간의 의미를 되묻게 됩니다. 업체 광고 등을 목적으로 ‘좋아요’가 수만 개 달린 페이지까지 공공연히 팔고 사는 현실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소셜 네트워킹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네트워킹인 걸까요.
모처럼 선량한 마음을 가진 누리꾼들을 저버린 그들에게 왠지 날 선 댓글 대신 색종이 두 장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거짓 미담으로 모두를 등지게 할 바에야 방에 홀로 앉아 나쁜 도깨비 인형이라도 접는 편이 차라리 나을 테니까요.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