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사회부 차장
박현정 서울시향 당시 대표가 직원들에게 막말과 명예훼손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불명예 퇴진한 사건이다. 박 전 대표를 둘러싼 많은 루머 가운데 압권은 단연 박 대표의 ‘남성 직원 성추행’ 의혹이었다.
박 전 대표는 모 대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인정받은 성공한 경영인이었다. 더욱이 서울시향은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어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경영능력과 도덕적 자질은 별개’라거나 ‘여성의 리더십’을 싸잡아 비난하는 뭇매가 쏟아졌지만 ‘남성을 성추행하려 한 별난 여성’이라는 오명은 박 씨에게 치명타가 됐다. 직원 17명의 익명 호소문으로 촉발된 서울시향 사태는 결국 1개월 만에 박 씨의 자진 사퇴로 일단락됐다.
지난해 12월 호소문 사태 때 박 전 대표의 폭언을 주장한 사무국 직원들 역시 이를 입증할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사태 당시 녹취자료를 갖고 있다던 한 여성 직원은 “휴대전화를 분실했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확인이 어려워지자 경찰은 3, 4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시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핵심 진술이 엇갈리는 곽 씨와 정 감독의 비서 백모 씨는 출국금지 상태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시향 직원들이 최근 자신의 변호인을 정 감독의 횡령 혐의 사건을 맡고 있는 변호사로 교체한 것도 공교롭다. 해당 변호사는 지난해 초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잘나가던 이른바 ‘전관’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갑작스럽게 ‘방어 자세’로 전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2013년 시향의 살림살이를 맡은 이후 정 감독과 사사건건 부딪쳤다는 것은 국내 문화공연계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서울시향 사태의 본질을 ‘파워게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시향 사태가 지난해로 만료되는 정 감독의 계약기간과 겹친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만약 이번 사태가 정 감독의 유임을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사람을 솎아내려는 ‘조직적 왕따’였다면 이는 명예훼손을 넘어 심각한 범죄다. 시향 직원들의 호소문에서 주장한 내용의 사실 여부가 명백히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김창원 사회부 차장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