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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그래서일까. 그가 5월 20일 서울패션위크 초대 총감독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했다. 2000년 서울컬렉션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서울패션위크(서울시 주최, 서울디자인재단 주관)가 출범 15주년을 맞아 신설한 자리였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뜯어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서울시의원이 초등학생 딸과 쇼에 와서 ‘내가 왜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하느냐’고 따지지를 않나, 사방에서 티켓을 공짜로 달라고 하지를 않나.”
하루아침에 ‘게임의 룰’을 바꾸자 지명도 높은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한국디자이너연합회는 반발했다. 특히 이상봉 회장은 “연합회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처사”라며 서울패션위크 불참을 선언했다.
정구호 씨는 지난주 신문사로 나를 찾아왔다. “정작 문제는 디자이너였어요. 서울패션위크를 패션 비즈니스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더이상 나눠 먹기 식 쇼는 안 됩니다.”
60명 모집에 104명이 지원해 오늘까지 심사가 이뤄진다. 발표는 23일이다.
정 씨는 미국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작은 분식집을 하다가 1990년대 한국에 와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전적 의미의 디자이너는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한때 ‘정구호는 과대평가된 것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제는 그를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아모레퍼시픽 설화문화전의 뼈대를 만들었고, 전국의 맛을 찾아내 CJ비비고 메뉴로도 발전시켰다. 패션이 전방위 문화란 걸 보여줬다.
다시 지난달 세차장. 정 씨는 내게 말했다. “전 갑옷을 입었어요. 총알 맞을 준비가 돼 있어요.” 처음부터 쿠데타를 결심했던 모양이다.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쿠데타에는 ‘정교한 기술’이 있더라고. 명분을 갖추면 혁명도 될 수 있다고. 모두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