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정치글 파일, 출처 불명확하고 조악… 업무용 볼수 없어”

입력 | 2015-07-17 03:00:00

[원세훈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대법, 2개 파일 핵심증거 불인정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4·수감 중)의 2012년 대선 개입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유보’였다. 여야 정치권에 민감한 사안이었지만, 일단은 어느 한쪽의 손도 명쾌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에 이어 대법원의 재상고심까지 최종 결론이 나려면 내년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선거법 위반 관련 2개 파일 증거능력 없어”

대법원은 16일 원 전 원장의 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의 유무죄를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유죄 판단의 핵심 증거로 쓰였던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아 무죄 취지에 가까운 파기환송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은 결정적 증거였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국정원 심리전단 김모 씨의 e메일에 첨부된 두 텍스트 파일이 유죄 증거로 판단되면서 올해 2월 원 전 원장은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됐다.

425지논 파일은 2012년 4월 25일∼12월 5일 정부 정책 홍보와 야권 주장 반박 등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 요점을 담은 ‘논지’를 앞뒤로 바꿔 이름 붙인 파일이며, ‘시큐리티 파일’은 트위터 계정 269개 및 비밀번호, 활동 내용 등을 담은 ‘ssecurity.txt’ 형태의 파일이다.

2월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는 “(e메일과 파일을) 작성한 기억이 없다”는 김 씨의 법정 진술에도 불구하고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는 증거로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제315조의 2호가 근거가 됐다. e메일 대부분이 평일 업무시간대에 작성됐고,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는 점 등에 비춰 김 씨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로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전원합의체는 “425지논 파일은 출처가 불명확한 단편적이고 조악한 형태의 언론 기사 일부분과 트윗글이며, 시큐리티 파일은 기계적으로 반복 작성했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파일에 포함된 업무 관련 내용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됐는지 알 수 없고, 다른 심리전단 직원 e메일 계정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점에서 두 파일이 업무상 통상문서가 아님을 보여 준다”고 판단했다. 김 씨의 신변잡기 정보도 포함돼 있다는 점도 업무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중 하나였다.

○ 파기환송심-재상고심 거쳐 최종 결론

대법원은 항소심의 유죄 판단은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전제로 내린 판결인 만큼 이 파일의 증거능력이 부인된 상황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 가운데 트윗글과 리트윗글을 제외한 2125회의 인터넷 게시글 및 댓글 작성, 1214회에 걸친 찬반클릭 행위는 모두 심리전단 직원들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에선 선거법 위반 부분에 일부 유죄 판결이 나올 수도 있고, 전부 무죄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파기환송심 이후엔 다시 대법원의 재상고심을 거쳐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든 뒤에야 결론이 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 사건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기보다는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유무죄 판단 없는 파기환송’이라는 절묘한 선택을 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날 상고심 선고에 원 전 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고심 변론에 합류해 화제가 됐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선고 직후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처음의 이동명 변호사는 “논리적으로 납득은 되지만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 실체 판단을 안 해줘서 섭섭하다”며 “대법원이 지혜롭게 심판을 피해 간 듯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변호인인 설대석 변호사는 “증거 범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남은 증거만 가지고 대법원이 판단을 내리기엔 부담을 느꼈을 수 있을 거라 추측한다”고 말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조동주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