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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쏠림과 맹신은 경제의 적(敵)

입력 | 2015-07-19 15:34:00

쏠림과 맹신은 경제의 적(敵)
박진수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도처에서 경제상황 인식이나 정책방향에 관해 상반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재정 긴축’에 관한 유럽에서의 논쟁과 ‘성장정체’ 가능성에 관한 미국에서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논쟁들은 불황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가운데 정책당국이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했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글로벌 위기를 계기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확신이 약화되고 이를 대체할 이론체계가 등장하지 않은 지적 공백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코노미스트들은 옛 이론서를 뒤적이고 사례분석을 통해 역사적 교훈을 얻곤 한다. 그러면 과거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필자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 번째 교훈은 ‘맹신(盲信)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공산권의 몰락과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갖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전자는 시장을 전면 부정할 경우 초래될 비효율을, 후자는 시장이 완전하다는 그릇된 믿음이 초래한 해악을 잘 보여준다.
시장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은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시카고대의 라잔 교수와 징갈레스 교수가 공동으로 2003년 펴낸 ‘시장경제의 미래’에 잘 나타난다. 이들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가 자유방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장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켰을까. 계획경제의 몰락이 시장기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호소력을 높인데다, 세계경제의 호황이 장기화되면서 경기변동과 경제위기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이 주된 요인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교훈은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경제행위나 정책결정 시 한 방향으로의 쏠림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지나침의 해악은 지난 경제위기 사례를 보면 분명해진다.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부문의 과다 차입에, 2000년대 중후반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는 자산가격 버블에 의존한 가계의 과다 소비에, 그리고 2010년 유럽 재정위기는 정부부문의 과다 부채에 그 원인이 있었다. 경제의 특정 부문에 대한 과보호로 인해 국가경쟁력이 약화된 사례도 많았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이 두 가지 교훈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실마리는 경제학의 기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고 ‘경쟁이 효율을 높인다’고 가르치지만 이는 ‘시장이 완전하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깔고 있다. 시장실패의 시정이 없이 자유와 경쟁을 무한정 허용할 경우 투기나 불공정경쟁이 심화되고 그 과정에서 과다부채나 경제력 집중 같은 쏠림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오히려 경제주체들의 선택의 자유가 제약되고 경제의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코노미스트는 특정 이념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과유불급과 맹신에 대한 경계를 행동강령으로 삼아야 한다. 즉 경제는 ‘가운데’여야 한다.

경제가 어렵다. 세계경기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경제 구석구석에 쌓인 쏠림현상이 치유되지 않은 점도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구조개혁이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구조개혁의 성패는 올바른 방향 설정과 이해 당사자 간 갈등해소 여부에 달려 있다. 어느 때보다 멀리 보고 함께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이코노미스트의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