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아닌 인간 서장훈, 보여주고 싶었죠”
김종석 기자
최근 서울 강남에서 만난 서장훈은 가수 윤종신이 대표인 연예기획사와 전속 계약한 상태다. 매니저가 스케줄을 챙겨주고 의상, 메이크업 등의 담당 직원도 뒀다. 서장훈은 “운동을 관둔 뒤 규칙적인 일이 필요했다. 선수 때 나는 동물원의 사자 같았다. 팬들은 뛰고 있는 나를 바라만 볼 뿐 내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선입견도 생겼다. 방송은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다. 소통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한 개성과 자기주장으로 유명했던 그는 안티 팬이 많았다. 본인이 유난히 싫어했던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기사에 언급한 언론사에는 항의를 한 적도 있다. 그랬던 서장훈이 방송을 통해 이미지 개선을 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청소년 프로그램에 애착이 많다.
“학생들보다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으로 내 경험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싶다. 현실 직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는다. 실패는 자신을 잘못 보고 과신하는 데서 비롯된다. 시청자들이 나와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일 때 보람을 느낀다.”
농구는 4쿼터를 치른다. 서장훈은 “내 삶은 전후반을 마치고 연장전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40대 초반의 한창 때인데 무슨 의미일까. 그는 “내 꿈은 하나뿐이었다. 한국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유니폼을 벗었으니 앞으론 뭘 하든 덤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농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연세대에 다니던 1990년대 중반 농구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마지막 승부’ ‘응답하라 1994’ 등 드라마 소재가 됐다. 프로 통산 15시즌을 뛰며 그가 남긴 통산 득점 1위(1만3231점)와 리바운드 1위(5235개) 기록은 불멸의 이정표처럼 보인다. 이런 금자탑은 오로지 ‘꿈’을 향해 달렸던 그가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그는 운동복을 갤 때 늘 각을 잡고 운동화는 몇 년째 같은 모델만 신기도 했다. 유난히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습성은 일상생활로까지 번져 결벽증이 됐다.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보니 이런저런 징크스를 만들었다. 어느 날 뭔가에 집착하게 되고 안 하면 불안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의 현역 시절 야투 성공률은 51.7%로 높은 편이다. 그래도 미련이 많다. “절반은 실패한 셈이다.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크다. 후회가 된다.” 좀처럼 만족을 몰랐던 것도 장수의 비결이다.
서장훈을 농구장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마음의 고향은 농구장이다. ‘서장훈=농구’ 아닌가. 농구를 빼면 나를 논할 수 없다. 물 흘러가듯 살다 보면 어떤 기회가 오지 않을까.” 농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깊었다. 언젠가 운명처럼 농구와 재회할 서장훈을 상상해도 좋을 것 같다.
P.S. 그를 인터뷰하는 동안 프로농구 최고 명장인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합석했다. 유 감독은 연세대 코치 시절 서장훈을 가르쳤다. 유 감독은 “재혼(3년 전 이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혼자가 편하다.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가 다 큰 아들 챙겨주시는 게 죄송하고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기는 하다. 방송도 부모님이 TV에 나온 아들을 그렇게 좋아하셔서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