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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무대’의 무대는 어디쯤인가

입력 | 2015-07-20 03:00:00

대통령과 김무성(무대)의 불협은 원작에 따르라는 극작가와 등장인물을 재해석하려는 실험적 배우의 필연적 충돌

‘무대’의 새 인물 연기는 극작가의 분노에 막혀 좌절… 그 대신 객석으로 내려와 무대의 외연을 넓히려 하는 중

이제는 ‘김무성류’가 무엇인지 ‘차별’을 들고 무대에 오를 때




심규선 대기자

언어도 음식이나 음악과 같아서 어떤 단어를 듣는 순간, 추억의 한 자락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가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별명이라는 ‘무대(무성 대장)’도 그렇다. 나는 ‘무대’라는 말을 들으면 고우영의 만화 ‘수호지’에 나오는 ‘무대’가 떠오른다. 1973, 74년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던 ‘수호지’에 열광했던 세대라면 이해할 것이다.

‘무성 대장’의 ‘무대’와 수호지의 ‘무대’는 외모나 성격이 극과 극이다. 김 대표는 훤칠하고 마초적인 면이 있지만, 수호지의 ‘무대’는 볼품도 없고 초식남에도 끼지 못할 만큼 무능하다. 그저 착할 뿐이다. 영웅호걸 무송의 형이자, 천하절색 반금련의 남편이라는 게 그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니 김 대표를 수호지의 ‘무대’와 비교하는 것은 분명 실례다. ‘무성 대장’은 지난 1년간 당을 비교적 잘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용력과 통솔력, 풍부한 정치경험 덕분이라고 한다. 기자들에게 반말을 쓰는데도 별 탈이 없는 것을 보면 친화력도 강한 듯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충돌하면 ‘무성 대장’은 슬그머니 퇴장하고 수호지의 ‘무대’가 등장한다. 개헌 봇물 발언, 국회법 개정안 사태, 유승민 원내대표 퇴진 등 고비마다 그는 즉시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불협은 어디서 비롯되고, 왜 늘 김 대표가 지는 것일까. 권위적인 생존 극작가와 틀을 깨려는 실험적 배우가 만났기 때문이다.

극작가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양식, 가치관 등 모든 것을 창조하고 지배한다. 등장인물은 극작가의 ‘아바타’다. 당연히 배우에게도 극본에 충실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배우의 생각은 다르다. 자기 배역을 늘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싶어 한다. 희곡은 작품이지만 연기는 생물이고, 희곡은 영원하지만 연기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그런 욕심이 강한 편이다. 친박이라는 호패를 버리고, 두 번이나 공천에서 탈락한 게 방증이다.

두 사람은 관객과의 접점인 무대(舞臺)를 보는 눈도 크게 다르다. 대통령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 막이 있는 전형적인 액자형 무대를 선호한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만 연기하길 원한다. 그게 배우의 의무이자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 대표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마당놀이를 원하는 듯하다. 그가 ‘소통 강화’를 말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코믹 연기로 망가지는 것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살아 있는 대통령이 쓰는 희곡이다. 대통령은 인물의 재해석을 ‘자기 정치’ ‘배신’이라며 용납하지 않는다. 극작가의 주문에 따르든가 배역을 내놓든가 택하라고 강요한다. 김 대표는 전자를 택했다.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필요할 때가 머지않아서다. 그렇지만 심복(心服)이 아니라 언복(言服)처럼 보인다. 대통령과 당의 새 지도부가 만나 웃었지만, 결국은 갑인 극작가와 을인 배우의 위상 확인 퍼포먼스와 다름없다.

그래도 옳고 그름은 없다. 트렌드만 있을 뿐이다. 대통령도 배우를 거쳐 극작가가 됐다. 그는 배우 시절, 원치 않는 배역은 단칼에 거절하고 맡은 배역만큼은 똑 소리 나게 연기했다. 그게 티켓파워로 이어져 ‘박근혜류의 희곡’을 쓰는 카리스마 극작가가 됐다.

그러나 연극 중에는 인물을 재해석해서 다시 올리는 경우도 많고, 그것이 새로운 관객을 만들기도 한다. 정형화한 무대에 마당놀이를 접목하려는 시도도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배우가 공연 도중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면 무대는 순식간에 넓어진다.

‘무성 대장’은 지금 무대의 어디쯤에 있나. 새 인물을 연기하려는 시도는 당분간 자제하겠지만, 무대는 계속해서 넓게 쓰려 할 것 같다. 객석과 무대를 잇는 계단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그가 내놓은 오픈프라이머리도 객석 쪽에 한 발을 걸친 것이다. 다른 배우들도 찬성이다.

그가 온전히 자기 방식대로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극작가의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면 혹 모르겠다. 다만, 그 전에라도 ‘김무성류’가 기존의 연기와 무엇이 다른지 힌트 정도는 줘야 할 것 같다. 줄거리는 보이는데 디테일이 안 보인다.

“배우의 발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타고난 능력, 훈련, 실습이다. 타고난 능력은 필수적이지만, 재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훈련과 실습을 통해 재능을 살찌우고 발전시켜야 한다.”(오스카 G 브로켓)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