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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형오]당정청은 과연 한 몸인가

입력 | 2015-07-20 03:00:00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16일 청와대 회동은 환한 미소 속에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당정청은 한 몸’이라면서, 곧 고위 당정청 회의도 연다고 한다. 매번 듣던 얘기라선지 여론은 무덤덤하다. 정치는 만남이며 또 대화이건만, 우리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만남 자체가 빅뉴스가 되는 나라다. 날짜까지 헤아리며 오랜만이란 사실이 강조된다.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이럴진대 야당과의 대화는 아예 기대 밖이다. 하기야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도 대통령 대면하기가 어렵다지 않은가. 입안자의 땀과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정책은 국민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법이다.

새삼 당청관계가 어긋나게 된 건 이른바 국회법 파동 때문이다. 적잖은 세월 국정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삼권분립에 저촉되고 헌법을 훼손했다기보다는 신뢰의 결핍이 빚은 ‘참사’라고 본다. 소통 부족이 화를 키웠다.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처럼 부실한 초기 대응과 책임감 없는 태도가 정치적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여당으로선 법안에 대한 정치적 절충과 타협이 필요하고, 행정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로선 위임 입법에 대해 더이상 국회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법이다. 여당은 왜 야당과는 협상하면서 청와대·정부와는 타협을 못하는가? 청와대는 왜 국회를 직접 찾아가 입장을 설명하며 협조를 얻지 못하는가? 특히 새누리당은 이번에 청와대와 국회, 대통령과 당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신뢰와 소통이 둘 다 모자랐던 탓이다. 대통령에게 완패함으로써 당분간 정치의 동력을 잃게 됐다.

국회는 일원적 행정부와 달리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다원적 기관이다. 의원 개개인이 헌법적 책무와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직선제 이후 연속 당선된 국회 지도자 출신 대통령은 청와대로 가는 순간 그 사실을 곧잘 잊는 것 같다. 견제와 균형은 민주헌정의 기본이며, 국회와 행정부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국회가 제대로 일을 못하는 건 맞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대통령이 앞서 비판하면 정국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국회와 정부 또는 여야 간의 갈등이나 긴장관계도 대통령에 의해 촉발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여당은 청와대의 들러리가 되고 야당은 철저히 반대한다. 국회선진화법 이후론 마냥 법률을 묶어두며 행정부의 발목을 붙잡는다. 의원이 소속 정당의 지시대로 움직이니 법 취지도 무색해졌다. 국회는 있지만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의 국회 경시, 여당의 눈치 보기, 야당의 어깃장으로 삼권분립은 훼손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번 일로 대통령과 정치권 모두 상처를 입었다. 정치가 하루 빨리 정상화돼야 대통령의 남은 임기도 안정이 된다. 업무의 3분의 1을 대국회 관계에 쏟는다는 미국 대통령처럼 우리 대통령도 여야 지도부와 국회의원을 자주 만나야 한다. 국회는 책임의식을 갖고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 당정청 회의 역시 형식적이어선 안 된다. 토론도 내용도 활기도 없는 모임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진짜 ‘한 몸’처럼 되려면 서로 속살까지 보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정치는 제자리걸음이고 회의는 고답적이다. 여당도 이런 모습으론 차기 집권은커녕 내년 총선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다수 의석은 야당의 지리멸렬로 얻은 반사이익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정치공학적 계산보다 당청관계 회복과 여야 대화의 제도화가 더 긴요한 총선 대책이다. 정치는 대화다. 여야 정치권과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담대하고 진심 어린 대화가 선진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다.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