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한글 주제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전 참여 서영은-김다은 작가
국립한글박물관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전시회에서 함께한 서영은 김다은 씨(왼쪽부터). 두 사람은 “한글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영은=언어와 글자라는 게 공기나 물과 비슷해서 소중함을 깨닫기 쉽지 않다. 혼자 외국여행을 갔는데 우리말을 못 쓰니 유령처럼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인이세요?’ ‘네’ 그 짧은 대화를 하는데 유령의 시간이 날아가 버렸다. 우리말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우리다워지는지 실감했다.
▽김다은=소설 밖 한글은 서류, 정보, 지식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도구다. 소설 안 한글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축하는 언어다. 소설 밖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지만, 소설 안 한글은 작가가 만든다.
▽김=나는 컴퓨터 세대지만, 소설이 잘 쓰이지 않을 때는 원고지를 꺼낸다. 손은 빨리 쓰고 싶어 하는데 머리가 손을 못 쫓아가서다. 그럴 때는 원고지 작업을 하면서 머리와 손의 속도를 맞춘다.
▽서=한글 문장을 낭독하면 우리말이 내 몸의 핏줄과 세포 구석구석을 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모국어가 육체와 얼마나 깊이 교감하는지 깨닫는다. 무차별적 언어파괴, 외래어, 비속어가 횡행하는 걸 보면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김=소설가에게 한글은 ‘모음’이라고 생각한다. 모음의 ‘모’는 ‘어미 모(母)’다. 자음에 모음이 함께해야 비로소 글자가 만들어진다. 한글은 소설가에게 모음처럼 언어가 만들어지는 자궁 같다.
▽서=이달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소설 속 좋은 문장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문장배달’을 진행하고 있다. ‘육체로 사는 모든 산 것들이 무(無)로 환원하는 대역정’(김훈 ‘화장’), ‘실존의 도끼날 위에 엎어진 사람들이 있다’(최정희 ‘정적일순’) 등을 소개했다. 문학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새삼 느낀다. 내가 종(鐘)인 것처럼 문장들이 나를 친다.
▽서=(전시실 벽에 적힌 단어 ‘파르르 떨리는’을 가리키며) 저 단순해 보이는 두 단어가 한 사람의 심장이 떨리는 모습부터 우주 전체의 울림까지도 아우를 수 있다. 우리말의 폭과 의미는 이렇게 넓고도 깊다. 모국어로 집을 짓는 작가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