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아이패드 드로잉(2010∼2011년)
77세의 호크니는 새로운 기술에 개방적이고 새로운 매체의 실험에 적극적이다. 그는 2009년부터 아이패드를 활용한 회화를 제작했다(사진). 아이패드의 브러시 앱은 주변의 평범한 일상과 풍경, 사물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는 그렇게 막 그린 컬러 드로잉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e메일로 보내주곤 한다. 호크니의 디지털 그림은 그의 유화작품과 같이 다채롭고 대담하고 밝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면서 화가는 언제 어디서든 그릴 수 있고, 또한 그린 이미지를 바로 다수에게 유통시킬 수도 있다. 엄지만 쓸 수 있던 아이폰 대신에 아이패드가 등장하면서 손가락 모두를 활용하는 표현의 자유를 얻었다. 또 회화 기법상, 수채화는 색채를 세 번까지 겹쳐 그리는 게 물감의 효과를 살리는 최대치였다면, 아이패드는 색채를 여러 번 겹쳐 그려도 탁해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는 인간의 시각에 충실한 예술을 위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다. 그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1980년대에 그가 제작한 사진 콜라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사진을 입체주의 방식으로 이어 붙이는 사진 콜라주가 인간이 눈으로 사물을 보는 과정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호크니는 렘브란트에서 피카소에 이르는 선의 대가들을 참조하며 드로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술학교에서 드로잉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드로잉이 세상을 제대로 보게 해준다고 믿는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쓰는 노장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그건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좋은 작품이란 역시 인간의 자취를 담고 인간에 충실한 것이란 점이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