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없어 보이는 햄버거에도 매운 소스, 마요네즈, 소금과 후추 등 각종 양념이 들어간다. 동아일보DB
김성규 셰프
큼직한 고기 패티가 떡하니 중앙에 자리 잡는 햄버거에 넥타이 역할을 하는 것은 소스다. 다른 풍미를 더할 수도 있고 색깔도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처럼 다양하게 입힐 수 있다. 햄버거에 사용할 수 있는 소스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약간의 변화까지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무한대의 가짓수가 가능하다. 구글에서 영문으로 ‘햄버거 소스’를 검색 창에 쳐 돌려보니 ‘버거에 딱 어울리는 33가지 레시피’라는 글이 눈에 띈다. 그만큼 가짓수가 많다는 얘기다.
칼로 반을 잘라 보면 별것 없어 보이는 나의 햄버거에도 실제로는 여러 가지 소스를 사용한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하는 일은 소스를 만드는 일이다. 비결이라고 말하기엔 거창한 나의 기본 소스 몇 가지만 소개한다.
맛을 보면 혀가 화끈거릴 만큼 맵지만 구운 패티에 티스푼의 반 정도 분량만 발라주면 다른 식재료와 어울려 매운맛을 알아채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아무것도 섞지 않은 쇠고기 패티에 이 소스가 특별한 풍미를 더하는 것은 사실인 듯싶다. 많은 손님들이 “패티에 뭘 넣었어요? 패티가 참 맛있어요”라고 칭찬하기 때문이다.
빵의 두 군데 안쪽 면에 바르는 것은 ‘마늘 마요네즈’다. 마요네즈 500g을 믹싱 볼에 담고 다진 마늘 세 스푼, 레몬즙 두 스푼, 약간의 소금과 후추, 그리고 텃밭에서 키우는 바질 5, 6장을 칼로 잘게 썰어 넣은 뒤 잘 섞어 준다. 다진 마늘은 마요네즈를 특별한 소스로 변화시키는 신의 한 수다. 하루쯤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생마늘의 매운맛도 가시고 마요네즈의 느끼함을 잡으면서 잘 어우러진다. 레몬의 상큼한 신맛과 바질의 향긋한 비린 맛이 어우러져 이제 당당히 소스라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다.
케첩은 고기 위에 얹은 토마토 슬라이스의 맛을 조금 강하게 하는 정도로만 뿌리고, 노란색 머스터드로 알싸함까지 더하면 햄버거를 요리라고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다.
여러분도 믹서나 믹싱볼을 가지고 소스 만들기에 도전해 보시라. 누구의 레시피를 참고할 필요도 없다. 학창 시절 실험실에서 화학실험을 하듯, 아니면 하얀 도화지에 12가지 색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듯 몇 가지의 식재료로 자신이 생각하는 맛을 창의적으로 조합해 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음식이 인기를 끈 데에는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다. 매운맛이 주는 통증을 탐할 만큼 평소 혀를 함부로 굴렸다는 사실 말이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에 당긴다면 혀의 기능을 회복시킬 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소금기를 완전히 제거한 음식을 사나흘 먹어보거나 아예 이틀 정도 단식해 보면 우리 혀의 예민함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되나 깜짝 놀랄 정도다. 혀를 살려야 비로소 식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린 진짜 훌륭한 음식을 가려낼 수 있다. 한국 요식업의 발전이 여기에 달려 있다.
※필자(44)는 싱가포르 요리학교 샤텍 유학 뒤 그곳 리츠칼턴호텔에서 일했다. 그전 14년간 동아일보 기자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푸드카 ‘쏠트앤페퍼’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