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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정원 의혹, 모든 정치 삼키는 블랙홀로 방치할 건가

입력 | 2015-07-22 00:00:00


국회법 개정안 사태가 가까스로 수습되면서 정치가 정상화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이 터지면서 다시 표류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연일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고, 새누리당은 방어에 급급하다. 여야 원내대표단이 국정원 의혹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문제를 놓고 어제 밤늦도록 협상을 벌였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다른 중요한 국정 과제들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 의혹의 핵심은 국정원이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이 불법 활동에 이용됐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국정원이 이 프로그램의 로그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만큼 자살한 직원이 삭제한 기록을 복원하는 대로 국회 정보위 위원들이 현장 조사를 벌이면 될 일이다. 미진할 경우 그때 가서 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면 된다. 사실 국회의원들의 정보기관 방문 조사도 다른 선진국에서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당초 현장 방문조사를 주장했던 새정치연합은 이제 와서 국정원장 청문회와 현안 질의를 먼저 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심지어 안철수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어제 7개 분야 30개 자료의 제출을 국정원에 요구했다. 아무리 진상 규명에 필요하다고 해도 국가안보를 다루고, 비밀이 생명인 정보기관의 활동을 모두 노출시키라는 것은 지나치다. 국정원 직원의 자살을 놓고 타살 의혹을 제기하거나,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선거 조작에 활용했다는 식의 음모론이 나도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해당 해킹 프로그램은 세계 35개국, 97개 기관이 구입했다. 정보 획득이 주 업무인 정보기관이 정보기술의 발달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로그램 활용 과정에서 일탈이 있었다면 진상 규명을 통해 가려내고 합당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 된다. 같은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다른 나라에서 우리처럼 정치적 논란이 심한 곳이 있는가.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그동안 적지 않은 불법행위가 노출됐지만 특수성을 감안해 주로 의회 차원의 선별적 조사와 입법을 통한 견제가 이뤄졌다. 국정원이 정치권의 의혹 제기에 사사건건 대응하고, 심지어 전체 직원 명의로 공동성명까지 내 의혹을 반박한 것도 국가 정보기관답지 않은 경솔한 행동이다.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이자 160개 의석이라는 큰 덩치를 갖고 있으면서도 민감한 문제가 터지면 중심을 못 잡고 야당에 끌려다니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국회와 정치권에 협조를 촉구했지만 대통령 본인이 앞장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생과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정치권은 국정원 의혹은 의혹대로, 국정은 국정대로, 각각 분리해서 다뤄야 할 것이다.